[여성소비자신문] 우리나라 국민들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하루하루의 삶도 버거운데 대통령의 집무실까지 걱정을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청와대가 너무 외진 곳에 위치한데다 공간 배열상 너무 제왕적이고 권위적이어서 국민은 물론 근무자들간 소통도 어렵다는 것이다.

30여년 전 김영삼 대통령 후보가 청와대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기겠다는 선거공약을 내놓은 이래 단골 대선 공약이 되었다. 특히 박근혜 정권 탄핵의 단초가 되었던 최순실 사태를 두고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현직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시절에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반드시 실현시키겠노라 약속했으나 취임 후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면서 임기 내 이렇다 할 가시적인 노력도 그리고 국민들에게 납득할만한 설명도 없이 청와대를 떠나게 되었다.

문 대통령의 그 화려한 선거공약과 감동적인 취임사에 국민들은 환호했고 취임 초 80%의 국민지지를 얻었기에 광화문 시대 약속만큼은 큰 기대를 걸었다. 나의 친구들 역시 머지않아 등산복을 입고 청와대를 거쳐 북악산(北岳山)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등산로를 걸을 기대에 가슴 부풀었었다.

그러나 나는 문 대통령의 집무실 이전 공약 불이행에 내기를 걸었다. 불행히도 나의 예측은 맞아 떨어졌다. 대통령 경호에 어려움이 크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달랐다. 청와대를 들어가 보면 안다.

나의 청와대 방문은 딱 한 번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 학계 대표로 초청받아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다. 입구에서부터 샅샅이 당하는 몸수색, 정돈된 자세의 입장, 급한 일이 발생하였다며 뒤늦게 입장하여 기계적으로 내미는 대통령의 악수에 너무 실망했다.

간단한 대통령의 인사를 뒤로 청와대를 나오기까지 긴장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영화에 보았던 옛날 임금의 알현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그 후로 나는 청와대를 청와궁으로 부르고 있다. 건축가 승효상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청와대를 “전형적인 봉건왕조 건축의 짝퉁 같은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전에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청와궁 생활에 익숙해진 문 대통령이 궁궐을 떠나 도심의 서민들에게로 나온다는 것은 극히 어려울 것이라는 게 나의 지론이었다.

20대 대통령 선거전이 시작되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청와대 집무실 이전이 공약으로 나왔다. 혹시나에서 역시나로 끝맺음해왔던 주제이기에 국민들 사이에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윤석열 당선인은 취임 후 청와대에 발을 들여 놓지 않겠다면서 집무실 이전을 서둘렀다.

코로나 팬데믹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 집무실이 무슨 대수냐며 국민들의 의견이 찬반으로 분분한 가운데 국방부 청사가 있는 용산으로 이전 계획이 확정되었다.

5월10일 20대 대통령 취임식날을 기해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되돌려 준다는 것이다. 이처럼 윤 당선인이 많은 과제들 가운데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우선하여 강력히 추진하는 것은 “공간이 의식을 지배 한다”라는 믿음 때문인 듯하다.

공간이 인간의 의식과 사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콜린 엘러드(C. Ellard)라는 환경심리학자는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라는 말로 설명한다. 봉건주의 시대의 궁궐과 유사한 청와대에서 생활하는 동안 대통령이나 참모들은 국민들의 삶과는 격리되고 단절된 사고에 매몰되어 가는듯하다.

대통령은 아부에 능한 주위 인물들에 둘러싸여 자신의 결정이 무조건 옳다고 여기는 확증 편향과 함께 국민위에 군림하게 되기 십상이다. 청와대의 역사를 보면 고려시대에는 남경(南京)이라는 별궁이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경복궁 후원이었다.

일본 점령기에는 조선 총독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경무대, 4.19혁명 이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는 청와대로 바뀌는 등 약 1000년의 역사를 이어온 권력의 중심지이었다.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이 수립된 후 75년에 가까운 세월의 흐름에도 여전한 제왕적 오만과 독단이 낳은 대통령의 살해, 자살, 투옥 등 국가적 비극이 현재 진행형이다. 검찰로서 반복되는 최고 지도자들의 비극을 지켜보아온 윤 당선자 자신이 그 자리에 서게 되었다.

제도적 보완에 앞서 집무실 이전을 서두르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다. 장소와 공간의 영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당선자는 충분히 이해한 듯하다.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H. Bergson)이 그의 저서 ‘창조적 진화’에서 언급한대로 ‘과학과 문명은 시간을 독립변수로 삼으려는 열망’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봉건주의 시대의 궁궐은 절대자의 지시에 순종하는 백성들과의 소통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도로 발달한 과학문명의 국민주권시대 지도자는 국민과 함께 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아무리 TV나 신문과 같은 공중 매체나 SNS와 같은 누리소통망이 발달되어 비대면이 일상화 되어있다고는 하지만 구중궁궐과 같은 환경에서는 민심과 동떨어진 왜곡된 정보를 받아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더욱이 시간에 따른 상황변화를 신속하게 제공해 주어야할 참모들마저 대면하기가 쉽지 않은 공간에서는 뒤늦은 대책으로 실기하고 그릇된 방향으로 국정 운영을 할 수 있다.

폭등하는 아파트 가격,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위기에서 대통령의 뒤늦은 처방과 대책은 국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국민들의 냉소를 자아내곤 하지 않았는가. 뿐만 아니라 통치자와 생각이 다른 국민들을 배제하고 동조 세력에만 유리한 편향된 국정운영으로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유발하는 것 역시 청와대의 공간 구조상 한계점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대통령들의 후보시절 공약 불이행에 따른 지도자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이제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행복한 대통령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우르과이의 호세 무히카(J. A. Mujica Cordano) 대통령은 화려한 대통령 관저를 버리고 농장에서 지내며 월급의 90%를 기부하는 검소한 생활로서 국민들의 신뢰를 얻게 되었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빈곤율이 크게 감소하고 매년 평균 5.7%의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2015년 그의 퇴임 시 “가장 이상적이고 정직했던 대통령”,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찬성보다 높다고 한다. 충분한 검토 없는 졸속 행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 운영도 과학기술이나 마찬가지로 타이밍 즉, 시간이라는 독립변수가 중요하다.

지난 30년간 찾지 못한 장소를 또 1년간 조사 연구한들 서울에서 용산만한 자리가 있겠는가. 미국 , 영국, 일본 등 서구 민주국가의 대통령 및 총리 집무실이 모두 수도의 중심부 시민들 속에 들어와 있다.

가장 짧은 시간에 자유민주국가체계와 경제발전을 달성한 우리나라에도 대통령 집무실이 구중궁궐이 아닌 시민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너무 다행스럽다. 약속을 지키는 지도자에 대한 신뢰 회복이 좀 더 나은 국민소통, 탈권위주의, 효율적 국정운영을 가져와 사랑받는 대통령, 행복한 국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kkucwka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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