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바람이 불어오는 곳 /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 길 / 그 길에 서 있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볼 /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 그곳으로 가네

햇살이 눈부신 곳 / 그곳으로 가네
바람에 내 몸 맡기고 / 그곳으로 가네
출렁이는 파도에 흔들려도 / 수평선을 바라보며
햇살이 웃고 있는 곳 / 그곳으로 가네

나뭇잎이 손짓하는 곳 / 그곳으로 가네
휘파람 불며 걷다가 / 너를 생각해
너의 목소리가 그리워도 / 뒤돌아 볼 수는 없지
바람이 불어오는 곳 / 그곳으로 가네

대구시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에 가면 ‘김광석 벽화길’이 있다. 벽화거리를 걷다보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란 상호의 카페가 있다. 관광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김광석은 세상을 떠나 없지만 그의 노래는 쉼 없이 흘러나와 그를 떠올리게 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기대와 소망, 설렘이 느껴지는 대중가요다. 1990년대 감성을 대표하는 대구 출신 가수 김광석이 작사·작곡, 취입까지 했다. 1994년 6월 25일 나온 그의 4집 음반에 실려 지금도 인기다.

노래가 태어난 건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1994년 개그맨 이하원과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권정주(당시 동국대 연극영화과 재학), 서울대 서양사학과 학생이었던 이동혁(조선일보 기자, 스포츠조선 웰니스본부장 이사 등 역임)이 진행하던 MBC-TV의 여행정보프로그램 ‘세계는 넓다-배낭 메고 세계로’의 여는 곡과 닫는 곡으로 쓰기 위해 만들어졌다. 방송프로그램 로고송으로 선보인 이 노래는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크게 히트했다. 그 바람에 정치현장을 비롯, 중요한 행사장에까지 이 노래가 등장한다.

오연준 군, 문재인·김정은 앞에서 독창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올해 대통령선거 유세현장에서 흘러나와 눈길을 모았다. 국민의힘이 대선(3월 9일)을 앞두고 선거로고송으로 쓴 것이다. 윤석열 대선후보 이미지를 좋게 하는데 초점을 맞춰 노래가사를 ‘새바람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 공정한 상식이 있는 편안한 나라로~’ 등으로 고쳐 내보냈다. 윤 후보가 TV광고 2탄 ‘아이편’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곳’ 노래를 배경으로 어린이를 보듬는 온화한 모습을 돋보이게 했다.

2018년 4월 27일 ‘2018 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 때도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날 밤 판문점 남쪽지역 평화의 집 연회장에서 열린 행사 때 제주시 도남동에 사는 오연준 군(당시 12살, 초등학교 6학년)이 불러 화제였다.

해맑고 아름다운 목소리에 만찬장 참석자들 관심이 쏠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웃으며 박수로 화답했고 “몇 살이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오 군에 대한 보도는 나라 안팎의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천상의 목소리…’, ‘꼭 안아주고 싶은 천사…’ 등 찬사가 쏟아졌다. 국내·외 언론매체들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기대와 소망이 있는 곳을 말한다며 남북관계자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고 보도했다. 그날 이 노래가 등장한 건 남북화합·평화를 의미해 선곡된 것으로 알려졌다.

숨은 뒷얘기로 오 군이 그때 이 노래를 부르지 못 할 뻔한 일이 있었다. 오 군이 대중에게 알려진 계기가 된 2016년 Mnet 예능프로그램 ‘위키드’를 통해 성대결절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오 군의 아버지는 의사로부터 “오연준의 목상태가 안 좋아 심해지면 노래를 못 부르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오 군의 목 관리에 특별히 신경 써 남북정상회담 만찬장에서 무사히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2015년 11월 6일부터 2016년 1월 16일까지 tvN이 방송한 20부작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최종 편에서도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드라마 마지막 부분에 첫 회 방송 때의 장면으로 돌아가 이 노래가 나오면서 철거되기 전 1988년 서울시 쌍문동 봉황당 골목이 다시 한번 비춰진다.

신원호 감독 연출, 작가 이우정 극본의 ‘응답하라 1988’은 쌍팔년도 쌍문동, 한 골목 다섯 가족의 왁자지껄 코믹가족극이다. KBS-2TV 청소년로맨스드라마 ‘사춘기 메들리’의 삽입곡(OST)으로도 쓰였다.

2013년 7월 방영된 4부작(스페셜)으로 10대 소년과 소녀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 노래가 나온다. 2018년 11월 29일 종영된 JTBC의 감성여행 다큐멘터리 방송프로그램 제목도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노래가 방송을 타면서 유명해지자 책, 영화, 뮤지컬 등 여러 영역에서 직·간접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1934년 1월 15일 아산출생~2022년 2월 26일 별세)의 저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2003년 6월 30일 나왔다. 외국여행에세이집으로 문학사상사가 펴냈다. 인천지방경찰청이 만든 탈북민 소재 단편영화 ‘바람이 불어오는 곳’, 서울독립영화제 출품작 다큐영화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마리오 감독 연출) 등도 있다.

김광석 노래 소재 최초 뮤지컬 공연

김광석의 노래를 소재로 한 국내 최초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도 무대에 올려졌다. 공연기획 제작사 LP Story(대표 이금구)가 만들 작품으로 2012년 김광석 고향인 대구에서 첫 공연이 있었다. 대구 출신 제작자가 대본을 썼고 대구 출신 음악인이 주연을 맡아 대구서 첫 공연무대가 열린 게 이채롭다.

김광석 노래를 소재로 한 창작뮤지컬 중 ‘가장 김광석 다운’ 작품으로 전국 주요 도시에서 선보였다. 뮤지컬은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은 동아리밴드 ‘바람’ 멤버들 이야기로 꾸며졌다. 꿈, 사랑, 군대, 취직, 결혼, 육아 등 현실적 삶의 갈등 속에 밴드를 접고 평범하게 살아가다 음악과 우정에 대한 진실을 발견하고 20년 후 다시 모여 감동과 환희의 콘서트를 펼친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김광석의 노래는 세월이 지나도 세대와 영역을 뛰어넘어 사랑받고 있다.

김광석은 1964년 1월 22일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1989년 1집 음반을 시작으로 젊은이들 가슴 깊이 파고드는 시어(詩語)를 들려줬다.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등 자작곡이 아닌 대표곡들도 많지만 직접 쓴 아름다운 노랫말로 ‘음유시인’으로도 불렸다.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 우리나라 포크계보를 잇는 음악적 행보로 찬사받았다.

대학생연합 노래동아리 ‘메아리’멤버로 노래를 시작한 김광석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 ‘동물원’을 거치며 주옥같은 명곡들을 남겼다. 1989년 솔로가수로 홀로 서 4장의 정규음반과 2장의 리메이크앨범, 1천회가 넘는 소극장콘서트를 통해 ‘가객(歌客)’의 위상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 많은 이들을 슬프게 했다. 1996년 1월 6일 새벽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원음빌딩 4층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것이다. 그의 나이 32세 때였다.

대구 방천시장에 ‘김광석 벽화길’

김광석은 갔지만 노래는 남아 그를 기리는 마음이 이어지고 있다. 2008년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 노래비가 섰다. 2010년엔 그의 고향인 대구시 중구 대봉동에 ‘김광석 거리’가 만들어졌다. 부근의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은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하는 ‘한국관광 100선’에 들어가고 다양한 상을 받은 대구의 유명여행지다. 노랫말, 그림, 사진, 벽화, 포토존, 사랑의 자물쇠 거는 곳, 야외콘서트 홀, 쉼터와 음식점 등이 길손을 맞고 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노래하는 철학자’로도 불린 김광석은 음악을 통해 살아있다. ‘일어나’, ‘그대 웃음소리’,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자유롭게’ 등 서사와 서정을 넘나든 노랫말이 말하듯 낭랑한 목소리로 푸른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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