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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영혼 달래주는 치유의 대중가요 ‘당신의 마음’교도관 출신 작사가 김지평, 사형수들 마음 모티브로 노랫말 지어···가수 방주연 1972년 발표 히트 ‘한국가요대상 작사부문’ 수상
왕성상 언론인/가수 | 승인 2022.02.22 08:14

[여성소비자신문] 바닷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당신을 그립니다.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 턱 밑에 점 하나

입가에 미소까지 그렸지마는

아~아~ 마지막 한 가지 못 그린 것은

지금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 턱밑에 점 하나

입가에 미소까지 그렸지마는

아~아~ 마지막 한 가지 못 그린 것은

지금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

김지평(본명 김종호) 작사, 김학송 작곡, 방주연(본명 방일매) 노래의 ‘당신의 마음’은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치유의 가요다. 방주연의 대표곡으로 가끔 방송이나 공연무대에서 들을 수 있다.

1970년대 대중의 가슴을 파고든 이 노래는 언뜻 듣기엔 바닷가에서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곡으로 알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사형수들 마음을 모티브(표현의 동기)로 삼아 만들어졌다.

1972년 8월 발표된 ‘당신의 마음’은 법무부 교정직 공무원이었던 김지평이 공직 근무 중 음악적 영감을 받아 노랫말을 썼다. 그의 작사가 데뷔작이기도 해 의미가 있다.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수 상담

김지평은 작사가로 활동하기 전엔 서울 서대문 부근에 있었던 서울구치소 교도관이었다. 교무과에서 서적(책) 검독을 하면서 사형수 상담업무를 맡았다. 그는 남은 삶이 정해진 사형수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삶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됐다.

인생 허무와 추억을 되새겨보는 안목도 키웠다. 더우기 사형수들이 모두 잔혹한 성품을 가진 게 아님을 알게 됐다. 자신과 대화했던 사형수들이 하나 둘 형장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생각이 더욱 깊어졌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에겐 ‘정말 알 수 없는 게 사람 속’이란 화두가 떠올랐다. 짬짬이 작사공부를 하며 노랫말을 쓰기 시작할 때였다. ‘당신의 마음’ 가사는 그렇게 만들어지고 작곡가 김학송의 곡이 붙여져 방주연이 취입, 발표하게 됐다.

4분의 4박자 슬로우락(Slow Rock) 리듬으로 흐르는 멜로디와 얼굴의 점 하나까지도 다 그렸지만 정작 당신의 마음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노랫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알 수 없는 당신’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과 기다림을 노래한 것이다.

노래 1절 첫머리에 나오는 ‘바닷가 모래밭’은 전남 영암에서 자란 김지평의 어린 시절 추억이 어린 덕진강변이다. 물결에 밀려왔던 강물이 빠지면 하얗게 드러났던 그곳 모래밭은 좋은 놀이터였다. 덕진강은 월출산국립공원 동쪽으로부터 흐르는 지역이다. 덕진다리 밑을 지나 해창을 거쳐 목포에 이르는 덕진강은 사람과 소금, 고기 등을 실어 나르는 뱃길이었다.

김지평이 이 노래 가사를 쓴 건 1971년. 작사가 정두수(1937년 4월 18일~2016년 8월 13일, 하동출생)의 작사교실에 다니면서다. ‘정두수 작사교실’ 1기생인 그는 어린 시절 백사장에서 뛰놀던 추억과 사형수들과의 만남에서 느낀 감정을 노랫말로 엮어낼 수 있었다.

그가 군 제대 후 상경, 가톨릭성음악원 4학기 동안 12과목을 공부하면서 전문음악인으로서 소양을 쌓았던 것도 작사에 보탬이 됐다.

‘당신의 마음’은 1972년 8월 6일 오아시스레코드사가 낸 정규음반 머리 곡으로 실려 인기였다. 음반은 방주연의 독집앨범으로 12곡이 담겼다. 신곡 몇 곡과 ‘그대 변치 않는다면’, ‘꽃과 나비’ 등 자신의 히트곡과 다른 가수들 노래를 리메이크한 베스트음반에 가깝다.

청소년, 여성들에게 인기

‘당신의 마음’은 발표 첫해부터 히트곡으로 떴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사형수들 마음을 악상에 접목한 노래사연이 알려지면서다. 아름다운 노랫말, 인기작곡가 김학송의 뛰어난 작곡, 방주연의 애틋한 창법으로 음반을 찾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청소년, 여성들에게 인기였다. 그 바람에 이 노래는 1972년 최대히트곡이 됐고 방주연은 인기가수 자리에 앉았다.

‘당신의 마음’은 노래발표 20년이 된 1992년 KBS 제2라디오가 조사·발표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대중가요 순위’에서 5위를 했다. 오랜 기간 아마추어 가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도 뽑혔다. 나훈아, 딱따구리 앙상블(KBS합창단 출신의 김봉환, 박현숙, 홍인선이 1983년 결성), 최성수, 박강성, 김태정 등 여러 가수들도 리메이크해 취입했다.

그 바람에 신인 작사가 김지평도 이름을 날렸다. 1972년 TBC방송가요대상, 1973년 한국가요대상 작사부문 상을 받았다. 가요작사계 샛별로 떠오른 그는 3년 뒤 교도관직을 그만두고 작사가로 변신했다.

1985년 작사한 이진관의 ‘인생은 미완성’이 크게 히트하면서 KBS가요대상, 1986년 제5회 가요대상을 받는 등 더욱 유명해졌다. 그는 작사와 더불어 음악평론가, 방송작가로도 자리를 굳혔다.

‘당신의 마음’을 부른 방주연은 1951년 1월 25일 상업을 했던 집안의 2남 1녀 중 맏딸로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부산 해운대로 이사해 자랐다.

해운대초등학교 시절 육상선수였던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 청량리로 옮겨 휘경초등학교, 덕화여중을 졸업했다. 중학생 땐 응원단장으로 교내명물이었다. 음악에 관심이 많아 덕화여상 2학년 때 부모 몰래 음악학원에서 드럼을 배웠다.

가사도 틈틈이 써 16살 때인 1967년 7월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창작분과위원회 작사가 회원으로 가요계에 발을 디뎠다. 고교 3학년 땐 부모 몰래 ‘김부해 가요학원’에서 노래공부를 했다.

여류학자가 되길 바라는 부모의 희망에 따라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으나 꿈은 가수였다. 대학 1학년 2학기 등록금을 학원비와 음반제작비로 쓴 게 들통나 집안 반대에 부딪혔다. 나흘간 단식을 하며 자살하려는 딸에게 그의 부모는 손을 들고 말았다. 그 사건 후 아버지는 예명(방주연)까지 지어주는 협조자가 됐다.

대학중퇴 후 가수로 뛰면서 1969년 재일동포위문공연단으로 일본에 갔다. 그때 서경술 평론가 눈에 들어 데뷔음반(‘민해송/방주연-신세기. 1970년’)을 내며 정식가수가 됐다. 자신을 알리는 이름으로 가수로는 방주연, 작사가로는 본명인 방일매를 썼다.

데뷔곡 ‘슬픈 연가’ 등 5곡을 취입, 트로트가수로 출발한 그는 활달한 성격에 시원한 창법으로 노래 잘하는 가수로 인정받았다. 이후 오아시스레코드 전속가수가 돼 ‘밤비가’, ‘알고 싶어요’ 등을 발표하고 1970년 12월 자신이 작사한 ‘꽃과 나비’를 처음 히트시켰다.

이어 ‘자주색 가방’, ‘기다리게 해놓고’ 등 히트곡들로 20대 시절을 화려하게 보냈다. 그는 이수미, 정훈희 등과 인기경쟁도 벌였다. 1972년 같은 오아시스레코드 전속가수였던 이수미와는 라이벌 관계였다. 이수미가 ‘여고시절’을 발표하면 방주연은 ‘당신의 마음’으로 맞섰다.

방주연, 자연치유학 박사로 유명

방주연은 1977년 사업가(강현모/외국에서 별세)와 결혼, 가요계를 떠났다. 그는 1979년 임파선암 선고를 받자 음악을 접고 병마와 싸웠다. 선택한 방법은 자연요법. ‘세상을 아름답게 산다’는 뜻으로 이름을 방세미로 바꿨다.

1993년 서울 서교동에 ‘늘 푸른 건강센터’도 열어 자연요법연구가로 변신했다. 자연치유학 박사로 2006년 4월엔 한국셀프휠링파워연구소장으로도 취임, 강의와 사회단체활동에 열심이다. 1982년 6월엔 트로트곡 ‘공항대합실’을 발표, 가요계에도 컴백했다. 이후 이산가족주제가 ‘한 맺힌 정’을 불렀으나 예전 인기를 되찾지 못했다.

‘당신의 마음’ 노랫말을 쓴 김지평은 1942년 2월 17일 전남 영암군 덕진면 금강리 금산마을에서 태어나 덕진초등학교, 영암중·고를 졸업했다. 대표작 ‘인생은 미완성’을 비롯해 ‘숨어 우는 바람소리’ 등 그가 작사한 히트곡들이 많다.

‘한국가요 100년사’, ‘한국가요 정신사’ 등의 책도 썼다. 박건호(1949년 2월 19일~2007년 12월 9일, 원주출생)와 함께 우리나라 대중가요사 산증인으로 음악저작권 보호에도 힘썼다. 그는 현대악보사, 후반기출판사, 월간 가요, 월간 뮤직라이프, 삼호출판사 등지에서 편집국장을 지냈다.

또 △KBS 1TV ‘가요무대’ 창설위원, KBS 라디오 ‘세월 따라 노래 따라’, ‘테마 디스크쇼’ 출연 △MBC ‘해방 50년 노래 50년’, ‘한국가요 그 뿌리를 찾아서’ △PBC-FM ‘그 시절 그 노래’ 등에서 프로그램 구성 및 해설을 맡았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부회장,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감사로도 활동했다.

작곡가 김학송(金鶴松/본명 김명순)은 1924년 평남에서 태어났다. 1950년 군예대 연주단원으로 음악과 인연을 맺었다. ‘강촌에 살고 싶네’, ‘그림자’, ‘낙서’, ‘빗속의 연인들’, ‘서산 갯마을’, ‘자주색 가방’, ‘정’ 등을 작곡했다. 피아니스트, 작사가, 편곡가, 악단지휘자이기도 하다. 작사가이기도 한 그는 가사를 쓸 땐 박일명이란 예명을 썼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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