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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 보리암에서 태어난 국민애창가요 ‘밤배’휘문고/동국대 출신 포크듀엣 ‘둘다섯’ 멤버 오세복 작사/작곡, 음악으로 들려주는 희망의 메시지···노래비 건립, 음악교과서 실려
왕성상 언론인/가수 | 승인 2022.02.11 07:20

[여성소비자신문] 검은 빛 바다 위를

밤배 저어 밤배
무섭지도 않은가봐

한없이 흘러가네
밤하늘 잔별들이

아롱 저 비칠 때면
작은 노를 저어 저어

은하수 건너가네
끝없이 끝없이 자꾸만 가면

어디서 어디서 잠 들텐가
음∼ 볼 사람 찾는 이 없는

조그만 밤배야

끝없이 끝없이 자꾸만 가면

어디서 어디서 잠 들텐가
음∼ 볼 사람 찾는 이 없는
조그만 밤배야 

힘들고 지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달려가는 게 인생이다. 깜깜한 밤에도 별빛과 등댓불을 보고 나아가는 배처럼 말이다. 모두들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요즘 ‘검은 빛 바다 위를 밤배 저 밤배∼’로 나가는 대중가요 ‘밤배’가 떠오른다.

이 곡은 우리들 삶을 빗댄 가요다. 깜깜한 밤바다를 거세게 몰려오는 파도와 맞서며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배를 노래한 것이다. 밤바다와 파도는 험한 세상을, 배는 바로 우리들 자신을 말한다. ‘밤배’는 음악으로 들려주는 희망의 메시지다.

‘밤배’는 4분의 4박자, 슬로우록 풍으로 부르기가 쉽다. 포크듀엣 작곡가 겸 작사가 오세복이 만들고 그가 소속된 노래그룹(듀엣) 둘다섯(2+5)이 부른 곡으로 유명하다. 감미로운 화음이 돋보이는 그들의 대표곡이자 가사만 들어도 흥얼거리게 되는 추억의 명곡이다.

1973년 둘다섯이 부른 ‘긴 머리 소녀’와 함께 사랑받았다. 특히 동반 히트 후 10년 이상 스테디셀러 곡으로 서민들 애창곡이기도 했다. 노래가 나온 지 반세기 가까이 흘렀지만 7080세대에겐 여전히 인기다.

1974년 음반 수록 ‘긴 머리 소녀’와 동반 히트

‘밤배’ 노래가 첫선을 보인 건 1974년 여름. 그해 둘다섯이 부른 ‘긴 머리 소녀’와 함께 크게 히트했다. 이 노래는 ‘둘다섯’의 멤버 이두진(1952년생)과 오세복(1953년생)의 우연한 만남에서 태어나고 히트까지 했다. ‘둘다섯’은 두 사람의 성씨를 따 이름이 지어졌다. 이두진의 ‘이’=둘(2)과 오세복의 ‘오’=다섯(5)으로 작명된 것이다.

서울 휘문고 선·후배 간인 이들은 동국대를 다녔다. 1973년 봄 선배인 이두진은 후배 오세복이 전산학과에 입학하자 기분이 좋았다. 오세복과 음악적으로 통하는 데다 고교에 이어 대학에까지 동문이 됐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이두진은 ‘참 잘 됐다. 저 후배는 곡도 잘 쓰면서 노래도 잘 하고 덩치까지 크니 듀엣을 만들면 잘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고교시절 서로 다른 동아리에서 음악활동을 했던 터라 안면이 있었다. 어느 날 이두진은 오세복을 불렀다. “세복아! 이번 신입생환영회 때 듀엣을 만들어 한번 발표해보지 않을래? 너 곡 써둔 거 많잖아!”

선배 제의를 받은 오세복도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잘 아는 고교선배가 대학생이 된 자신을 불러준 게 고마워했다. 써놓은 곡들을 묵히기 아까운 생각도 들었다. “그러죠. 뭐!” 오세복의 답은 간단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듀엣가수가 돼 음악활동에 나섰다.

그해 대학 신입생환영회 행사 때 자작곡 ‘긴 머리 소녀’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학교신문에 실리면서 졸지에 대학가 화제인물이 됐다. 음반업계에게까지 알려져 지구레코드사의 최경식 상무가 이들을 수소문해 불렀다. 두 사람은 “전속가수로 계약하고 음반을 내자”는 최 상무 제의를 받아들였다. 대학졸업 때까지 모든 비용을 대어준다는 조건이었다.

대학생 듀엣가수 이두진과 오세복은 그때부터 짬짬이 무대에 서는 등 본격 연예활동에 나섰다. 1974년 1집 음반에 이어 1975년 2집 음반도 냈다. 대학생가수란 깨끗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순수한 목소리, 풋풋한 사랑얘기가 담긴 노랫말이 먹혀들었다.

두 사람은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돼 있었다는 말을 실감했다. 1960년대 말의 트윈폴리오와 1960년대 초·중반의 어니언스 뒤를 이어 국내 남성듀오 계보를 이어가면서 1970년대 중반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소박하고도 시적인 노랫말, 서정적인 멜로디, 밝고 부드러운 하모니를 펼치며 1970년대 통기타시대를 풍미했다.

남해 상주해변에 ‘밤배’ 노래비

‘밤배’ 노래는 경남 남해의 절에서 만들어졌다. 오세복이 1973년 남해안 최대해변 상주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금산(錦山, 705m) 보리암(해수관음 성지)에 머물면서 앞바다에 떠다니는 밤배의 불빛을 보고 가사 초안을 만들었다. 오세복의 시상(詩想), 이두진의 악상(樂想)이 어우러져 태어난 ‘밤배’는 1974년 6월 그들의 데뷔음반에 실렸다. 

이두진이 2007년 7월 이런 내용의 글을 ‘둘다섯(밤배)과 다정한 사람들’이란 사이버카페에 올리면서 노래배 경치가 남해란 사실이 알려졌다. 이 씨는 카페 글에서 “1973년 남해를 여행하던 중 금산 보리암에 하룻밤을 묵게 됐다. 발아래는 남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상주해수욕장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캄캄한 밤바다에 작은 불빛이 외롭게 떠가는 게 정말 인상적이었다”며 “그 인상을 그대로 메모해 즉석에서 곡을 흥얼거려보니 어느 정도 노래가 돼 그 다음날 서울로 올라와 다듬어 ‘밤배’를 완성했다”고 했다.

그는 또 “아직도 금산 보리암에서 바라본 밤바다의 작은 불빛, 그 밤배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며 “가야할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가야하는 밤배는 거친 바다와 싸우며 삶을 살아가는 어민들의 운명이기도 해 ‘밤배’는 그들에게 바치는 노래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남해군은 2008년 11월 14일 상주면 은모래비치(상주해수욕장)에 노래비를 세웠다. 3m 높이의 비는 돛 모양으로 된 자연석에 ‘밤배’ 악보와 건립동기 등이 새겨져있다. ‘얼룩 고무신’, ‘어부’, ‘일기’, ‘바다’, ‘눈이 큰 아이’ 등 둘다섯이 부른 노래 10곡을 골라 들을 수 있게 음향시설까지 있다. 물결이 잔잔하고 고운 모래가 2㎞에 걸쳐 반원형으로 오목하게 된 상주해수욕장과 해변엔 관광객들 발걸음이 잦다.

긴 머리 유행, 밤배 타고 피서 붐 이뤄

그렇게 해서 완성된 ‘밤배’ 노래는 ‘긴 머리 소녀’와 더불어 방송전파를 타면서 크게 히트했다. ‘긴 머리 소녀’가 먼저 인기곡으로 떴고 잇달아 ‘밤배’도 상종가를 쳤다. 노래바람에 서울 구로공단(현재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은 물론 전국 대학가, 산업단지 등지엔 여대생과 여회사원들의 긴 머리가 유행했다.

머리를 기르고 밤배를 타고 피서 가는 게 붐을 이룬 적도 있었다. ‘밤배’는 초등학교 6학년 음악교과서에까지 실리는 등 국민 애창가요가 됐다. 시적인 가사, 서정적인 멜로디를 인정받았다.

노래가 한창 인기였을 때 둘다섯은 1980년 해체됐다. 오세복의 군 입대로 멤버가 바뀌었다. 이두진과 이지민이 오영진이란 이름으로 짝을 이뤘다. “오세복 뒤를 이을 사람은 같은 오 씨여야 한다”는 말이 있어 이지민의 예명을 오영진으로 바꿨다.

이지민은 후에 하야로비 멤버로 뛰었다. 김영진과 4월과5월 4기 멤버로 활동하면서 ‘장미’를 히트시켰다. 그 뒤 둘다섯은 다시 오세복과 우영철로 바뀌었다.

둘다섯의 초기멤버 이두진과 오세복은 대학졸업 후 각자의 길을 걸었다. 이두진은 직장생활을 하다 1995년 서울 서초동에 국내 최초 음치교정학원(음치클리닉)을 열어 10여년 운영했다. 분당에서 라이브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안수집사로 한밭제일장로교회 음악회 등에서 공연하고 있다.

오세복은 미국서 음치교정기술을 공부, 귀국한 뒤 학원과 주부노래교실을 차렸다. 서울 송파에서 4대째 살았던 그는 2006년 심장수술을 받으려고 날을 잡아놓고 우연히 들렀던 안동이 맘에 들어 폐업한 카페를 사들여 운영했다.

안동댐기념탑 석동선착장 부근으로 그해 5월 ‘밤배’란 상호로 라이브카페를 연 것이다. 2011년 12월엔 서울 강남구청역 근처에 라이브공연을 하는 신개념음식점 ‘오세복의 밤배’도 개업했다. 미국 뉴저지의 일반음식점에서 라이브공연 하는 것을 보고 차린 곳이다. 문화외식복합공간을 지향하며 정육식당에 음악공연을 접목, 눈길을 끌었다.

오세복, 2021년 8월 11일 건강악화로 별세

그러나 오세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몸이 안 좋아 2021년 8월 11일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7세. 그는 가수 김연숙의 노래 ‘그날’을 작곡한 가수 겸 작곡가 이철식 씨와 새로운 ‘둘다섯’을 꾸려 활동키로 하고 음반재킷사진까지 찍었지만 건강악화로 신곡(‘남자가 사는 이유')을 선보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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