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다음 글은 남명 조식(南冥 曺植) 선생께서 선조 초기에 승정원에 올린 상소문(上疏文, 南冥集)을 축약하고 지금의 말로 조금 다듬은 것이다. 남명 조식은 조선 시대의 유학자 가운데에서 행동과 실천을 강조하신 분이다. ‘경의(敬義)’는 남명을 대표하는 두 글자이며 경(敬)으로 안을 올곧게 하고 의(義)로 바깥을 바르고 떳떳하게 하여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敬以直內 義以方外).

남명은 제자를 기름에서도 병법을 가르쳤으며 늘 국난에 대비하고 백성의 삶을 걱정했다. 그가 타계한지 20년 후인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의 제자들인 망우당 곽재우, 내암 정인홍, 죽유 오운, 대소헌 조종도, 약포 정탁 등은 의병장으로 큰 공을 세웠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거병한 거의 대부분 의병장들이 남명의 가르침에 터하고 있었음을 생각할 때 남명이 아니었으면 임진왜란을 극복하기는 실로 어려웠을 것이다.

‘제가 엎드려 생각해보니, 나라의 근본은 쪼개지고 무너져서 물이 끓듯 불이 타듯 하고 여러 책임 있는 관리들은 거칠고 게을러서 응당 말해야 할 바에 침묵하고 심지어 허수아비 같기 조차 하다. 정치의 기강은 씻어버린 듯 말끔히 없어졌고 바른 정치로 국민을 위해야 한다는 원기(元氣)는 완전히 위축됐다.

지켜져야 할 예의는 쓸어버린 듯 없어졌고 형벌과 법규를 다스리는 공적인 일(刑政)들이 온통 어지러워졌다. 세상의 이치를 바르게 하려 노력해 왔던 지식인의 전통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허물어졌고 사회를 지탱해온 공정한 도리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사라지고 있다. 사람을 쓰고 집단의 이익에 따라 버리며 심지어 해롭게 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恣行)되고 있다.

나라에 기근이 이어지고 있고 창고는 온통 고갈되어 가고 있다. 공헌(貢獻)이 통하지 않으며 감사의 의무를 다하는 일에는 누구도 돌보지 않고 세금과 공물은 조금의 숙고도 없이 멋대로 걷고 있다. 또한 국방은 허술할 때로 허술해져 오랑캐들이 우리를 업신여기고 있다. 온갖 질병으로 인한 고통(病痛)이 널리 퍼지고 급하게 되어 하늘의 뜻과 사람의 일을 예측할 길이 없어졌다. 급기야 국민들의 원통함이 극에 도달하고 있다.

이제 완급과 허실을 분간하여 정말로 급한 일을 제대로 처리해 나라를 구해야 한다. 예로부터 비록 태평성대라 해도 옳고 그르고 되고 되지 않는 일을 따져야 했기에 가능한 넓게 글을 올려 나라의 일들을 논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지금은 나라의 형세가 엎어질 듯 위태로워 어찌할 수 없는 데에도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좌우로 둘러서서 보기만 하고 구원하지 않으니 진실로 나라의 형편이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여겨진다.‘

남명 선생의 말씀은 실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보여주신 듯하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원칙과 상식은 사라지고 정치는 신뢰를 잃었다. 사회를 지탱해온 공정한 도리가 사라지고 권력의 몰상식과 정치 편향으로 형벌은 참으로 혼란스러워졌다.

나라에 코로나19의 질병이 이어지고 나라의 빚은 1300조에 이르렀다. 세금은 조금의 숙고도 없이 걷어지며 국민의 혈세는 포퓰리즘으로 낭비되고 있다. 사회적 약자는 억울하고 애타는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국방은 허술할 대로 허술해져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으며 주변국들은 우리를 업신여기고 있다.

이러한 부패와 부정의의 바이러스는 치명적으로 우리 모두를 병들게 하고 있다. 하늘의 뜻과 사람의 일을 예측할 길이 없어졌다. 

우리 온 국민은 지금까지 피와 땀으로 이룩해온 값진 산업화와 참된 민주화의 결실인 이 나라 대한민국이 길을 잃고 비극적인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 역사는 되돌릴 수 없다. 우리는 슬기로운 시민으로서 자손들에게 떳떳한 조상이 되어야 한다.

조영달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k-lee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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