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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인생길에 힘과 용기 주는 노래 ‘저 높은 곳을 향하여’전재학 작사/작곡, 이영화 노래···1981년 MBC서울국제가요제 수상곡, 1977년 같은 제목 영화주제가로 만들어져 지금껏 교회복음성가로 애창
왕성상 언론인/가수 | 승인 2022.01.11 07:21

[여성소비자신문]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나 지금 가는 이 길이

정녕 외롭고 쓸쓸하지만 / 내가 가야할 인생길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나 지금 가는 이 길이

정녕 고난의 길이라지만 / 우리 가야할 인생길

아무도 몰라도 좋아 / 내 주님 가신 이 길은

나의 꿈 피어나는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아무도 몰라도 좋아 / 내 주님 가신 이 길은

나의 꿈 피어나는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2022년 새해가 밝았다. 한해 목표를 세우고 저마다 바람과 희망도 꿈꾼다. 이맘때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전재학 작사·작곡, 이영화의 노래인 ‘저 높은 곳을 향하여’다.

1977년 개봉하려던 기독교영화 ‘저 높은 곳을 향하여’(임원식 감독, 윤삼육 각본)의 주제가로 만들어진 가요다. 그러나 영화는 제때 상영되지 못했다. 자연히 노래는 묻혀버렸다. 작곡가 전재학은 노래라도 알려야겠다는 마음으로 1981년 가수 이영화에게 곡을 주어 발표됐다.

이영화는 이 노래를 1981년 MBC(문화방송) 주최 서울국제가요제 때 불러 세계가요제연맹회장상, 빌보드특별상을 받았다. 국제가요제 출품작답게 선율과 편곡의 스케일이 크고 시원한 울림의 맛이 난다. 더욱이 이영화의 가창력을 잘 보여준 곡이기도 하다.

클래식을 표방한 독특한 창법이 눈길을 모았다. 이영화가 MBC 서울국제가요제에 우리나라 대표가수로 추천,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다. 새내기 가수였던 그의 존재가치를 확실히 띄울 수 있는 기회였다. 노래 또한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다.

신앙고백과도 같은 ‘성공한 대중가요’

대중가요로 발표, 성공한 곡이지만 노랫말 내용은 신앙고백과도 같다. 기독교적 느낌이 들긴 해도 보통의 우리들 삶을 얘기하는 것 같다. 그만큼 공감의 폭이 넓다.

종교와 직업, 남녀노소를 떠나 삶을 마감할 때까지 쉼 없이 가야하는 험한 인생길에 힘과 용기, 희망을 주는 가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노래는 가요 팬들 사랑을 받으며 교회에서 가스펠(gospel, 복음)곡처럼 꾸준히 애창되고 있다.

노래가 히트하기까지엔 에피소드가 있다. 노랫말에 얽힌 사연이다. 가요제 출전 때 관계자들이 “가사 가운데 ‘주님’을 빼고 불렀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작곡가의 끈질기고 간곡한 요청 끝에 원래 노랫말대로 부르게 됐다.

이 노래에 앞서 1977년 같은 제목의 영화 ‘저 높은 곳을 향하여’가 먼저 선보였다. 배우 신영균, 고은아, 이순재, 김성원, 이정길, 강효실, 구봉서, 곽규석, 남진(가수) 등이 열연했다. 문숙, 윤복희(가수), 허림, 유준, 도토리자매 등이 특별출연했다. 

영화음악은 최창권이 맡았다. 우리나라 교회와 기독교인들 참여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교도소에서 순교(1944년 4월 20일 밤)한 주기철 목사(1897년~1944년)의 실화를 담은 내용이다.

식민지백성의 비애를 종교인의 삶과 신앙체험을 빌어 절제된 대사와 영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다. 주연배우 신영균은 주 목사의 신앙적 결단을 노련한 연기로 보여줘 영화의 격을 높였다. 기독교인은 물론 일반 관객들 가슴을 울렸다. 영화는 약 20만1000명이 본 것으로 집계됐다. 1982년 국내 최초 베타버전비디오로도 나왔다. 1990년엔 VHS비디오로 재발매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유신헌법 철폐운동을 벌이다 투옥된 문익환 목사(1918년 6월~1994년 1월) 등의 일을 떠올려 국민들에게 종교탄압 인상을 줄까 염려한 당국의 입김으로 개봉 첫날 상영되지 못한 일화가 있다(영화에 나오는 주 목사는 평안북도 정주에 세워진 오산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한경직 목사, 함석헌 선생도 같은 학교를 나오면서 오산학교는 민족정신의 보금자리로 거듭났다).

굴곡진 인생길 걸어온 이영화의 삶

가수 이영화는 1958년 2월 24일 부산시 중구 부용동에서 함흥출신 아버지(이재국), 함북 청진출신 어머니(김순진)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모창을 하다 노래에 빠져들게 됐다. 국악예술고를 졸업, 1976년 6인조 여성그룹 ‘버터플라이’의 리더싱어로 가요계에 발을 디뎠다.

1979년 발표 후 이듬해에 나온 독집음반(1집) 수록곡 ‘실비 오는 소리에’로 정식가수가 됐다. 이 곡은 가수 하수영(1948년~1982년 1월)이 첫 발표했으나 그가 세상을 떠날 무렵 작곡가 전재학이 이영화를 가수로 데뷔시키는 과정에서 리메이크해 부르도록 한 것이다.

그때 이영화의 가수 데뷔조건은 2가지였다. 청와대에 안 가고 마담뚜 목록에 올리지 말아달라는 것. 데뷔곡은 1980년 그녀에게 신인가수상을 안겼다. 이어 2집 음반에서 ‘멋진 주말’을 취입, 독특한 창법과 가창력으로 점수를 땄다.

이영화 삶엔 숱한 사연이 있다. 데뷔 때 유부녀로 ‘생계형 가수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는 KBS-1TV ‘아침마당’ 프로그램에서 지난날을 얘기했다.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 그때부터 노래하러 다녔다. 가장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졸업하자마자 밤무대에서 돈을 벌었다. 그렇게 다니다 유흥업소에서 음악 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 21살 때 아기를 낳았다.”

그는 “아기엄마여서 가수생활을 접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부녀 가수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기가 시들해진데다 남편의 사업부도로 “빚을 대신 갚으라”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자살까지 결심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재학 작곡가가 “가창력이 아까우니 아기엄마란 점을 숨기고 정식데뷔 해보자”고 해 가수가 됐다. 그는 “들킬까봐 조마조마했고, 그 무렵 좋은 가수들이 많았는데도 이듬해 10대 가수상을 받았다”고 신인시절을 떠올렸다.
이영화는 다른 사람들 목소리 흉내를 잘 내는 재주가 있다. 1984년 모창음반(‘모창 메들리’)까지 냈다. 윤복희, 윤시내, 임희숙, 나미, 이은하 등 20여명의 인기가수들 노래를 모창한 것으로 40만장 넘게 팔렸다.

그 덕분에 밤업소를 11곳까지 겹치기 출연하는 등 최고 인기시절을 보냈다. 1990년대 들어선 라틴댄스, 밸리댄스 등 춤을 곁들인 ‘날이 날이 갈수록’ 등을 발표하며 꾸준히 활동했다. △2007년 제15회 한국인기연예대상(전통가요 공로상) △2010년 12월 제18회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성인가요 신인상) △2011년 제19회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성인가요 최우수상)도 받았다.

그럼에도 굴곡진 삶은 이어졌다. 남편의 사업실패에 따른 가정불화와 이혼, 가수데뷔 무렵 루머의 중심이었던 아들(29세)마저 저 세상으로 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아들의 죽음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가 2004년 가스펠음반을 만들고 순회음악회 무대에 서는 등 열심히 뛸 때 홀로 자취하며 작곡 공부를 했던 아들이 급성심근경색으로 눈을 감았다. 임종도 못보고 병원에서 떠나보내야 했다. 이영화는 실어증, 우울증에 걸려 힘든 세월을 보냈다. 동료가수의 배신으로 1억원의 곗돈을 날리고 라이브카페마저 실패, 월세방에 사는 생활고도 겪었다.
이영화는 요즘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는 교회 집사로 중증장애인요양시설 청애원 후원회장, 사회복지법인 청원복지재단 이사로 봉사 중이다. 2006년 12월 재혼을 해 행복한 인생길도 펼치고 있다. 남편은 부산지역 조직폭력배출신 사업가로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의 보스역할 실제모델인 정병화 씨(신학석사). 신학대학원을 나온 그는 전도사로 새 삶을 살고 있다.

2016년부터 부산에 둥지를 튼 이영화는 연산역 앞에서 ‘이영화 7080라이브카페’도 운영 중이다. 남편이 작사한 ‘청춘아 가지 마라’를 음반으로 냈다. 직전엔 장욱조 곡을 받아 ‘바보엄마’란 앨범도 냈다.

전재학 작곡가, 2021년 1월 ‘코로나19’로 별세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노래를 만든 전재학 작곡가(목사/본명 전태균)는 2021년 1월 18일 ‘코로나19’로 투병하다 미국서 별세(향년 83세)했다. 장례예배는 1월 30일 풍성한교회(담임 박효우 목사)에서 개혁장로교회 한미연합총회장으로 올려졌다.

고인은 1942년 2월 서울서 태어나 1965년 한국외국어대 태국어과를 졸업, 베트남전쟁에 참가했다. 이후 1970년 서라벌레코드사 전속작곡가로 활동했다. ‘실비 오는 소리에’(1979년),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81년)를 작곡하는 등 음악가로 활동하며 여러 음악상과 작곡상을 받았다. TV드라마 ‘미련’, ‘애처의 일기’ 등의 주제곡도 만들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사부곡’을 작사·작곡했다.

그는 1995년 한국합동보수총회 동서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괌으로 이주, 괌 찬양선교교회 및 학교를 세웠다. 2002년 미국 LA에서 예능선교교회를 세워 담임목사로 일했다. 나성열린문교회, LA 사랑의교회, 나눔과섬김의교회 협동목사로 일하면서 한국적 복음성가 작곡을 위해 힘썼다. 고인의 유골은 우리나라로 옮겨져 ‘연예인 장(葬)’으로 장례예배를 드린 뒤 국군묘지에 모셔졌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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