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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 읽기] 류시화 '눈 위에 쓴 시'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1.12.20 07:45

[여성소비자신문] 눈 위에 쓴 시

                              류시화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 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시를 어디에다 써야 할까요? 누구나 종이 위에 쓴다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류시화 시인은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고 노래합니다. 하얀 눈이 내려 쌓이는 잊지 못할 거리를 걸으며 눈 위에 시를 쓰는 사람은 시인 중의 시인 같습니다.

우리는 종이 위에 쓴 시인의 시를 읽습니다, 그 시들은 종이 위에 남아 가끔 읽히며, 살고 죽기를 거듭할 것입니다. 그보다 사람 가슴에 쓴 시들이 염려됩니다. 가슴에 쓰는 시는 어디에도 발표하지 않고 가슴 속에서 삶을 후벼 파며 속으로 울며 떠돌 테니까요. 하염없이 허공에 대고 쓴 시들도 마음에 얹힌 사연들을 풀어내며 다시 엮으며 애달피 흘러갈 것만 같습니다.

류시화 시인은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시를 쓴다//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라고 예측하며, 눈처럼 녹아 흔적도 남기지 않을 시를 눈 위에 씁니다. 십이월의 눈은 세월 따라 다시 비가 되고 눈이 되어 내려올 영원한 시입니다. 맑고 깨끗한 눈 위의 하얀 시는 두고두고 읽힐 것입니다.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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