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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 읽기] 최서림 '나의 스펙은'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1.12.02 17:49

[여성소비자신문] 나의 스펙은 

최서림

 
매일 불암산 둘레길을 걷는다는 것
오월의 떡갈나무 이파리에 속삭이는 연두색 바람을 사랑한다는 것
이월 말이면 삼천포를 거쳐 남해까지 가서 동백꽃을 보고 온다는 것
등산과 바다낚시를 많이 해봤다는 것
금강송을 보러 강원도까지 갔다 온다는 것
밤새 지치지도 않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
시와 그림을 좋아하고 하모니카를 부는 친구가 있다는 것
백두대간을 종단한 시인 친구가 있다는 것
돌확에다 개구리밥과 생이가래를 기른다는 것 
집들이 때 받은 호접란을 이십년 이상 기르고 있다는 것
시골서 농사꾼의 아들로 자랐다는 것
목숨 걸고 한 여자를 사랑해봤다는 것
새삼 갈수록 아내가 소중해진다는 것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아있음에 감사하다는 것

이 시를 읽으면, 스펙 쌓기에 동분서주하는 취준생들이 안쓰럽게 떠오른다.  ‘스펙’이란 말만 들어도 어지러운 느낌이다. 요즘 보통 내놓는 스펙이라 함은 출생 후 성장과정, 학력, 학점, 토익 점수, 외국어 실력, 인턴 경험, 공모전 수상, 해외 연수, 해외 유학까지 갖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취업을 위해 지원서를 넣을 때는 이 중 하나라도 빠뜨리면 불리할 것 같은 일반화된 항목들이다. 이렇게 갈고 닦은 빼어난 스펙을 가지고도 취업을 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라고 한다. 하지만 천천히 뜯어보라! 한 사람의 개성과 근기, 장기 같은 것은 무시한 채 모두에게 거의 같은 표면적 경력과 경험을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그에 비해 시인이 총망라하여 보여준 “나의 스펙은” 스펙이라 하기에는 생경하면서도 참으로 멋있고 믿음직스럽고 통쾌하다. 사람 본연의 가치를 중시하며 생명을 사랑하며 자연과 함께 자유를 만끽한다. “연두색 바람을 사랑‘하고, 보고 싶으면 천리만리 길이라도 가서 동백꽃과 금강송을 보고 온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뜻에 따라 주체적으로 진실에 진력하는 행위가 가져다 준 경력, 바로 그것이다.

최서림 시인의 시 「나의 스펙은」에는 자연을 아끼고 보호하며 생명을 사랑하며 모험을 하고 예술을 좋아하는 막역한 친구들이 여러 분야에 있다. “집들이 때 받은 호접란을 이십년 이상 기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스펙인가. “시골서 농사꾼의 아들로 자랐다는 것” 또한 자랑스러운 스펙으로 내놓는다. 아빠 찬스 같은 것은 엄두도 내지 않는다. 내 힘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아내를 사랑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스펙을 귀중하게 높이 평가하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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