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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 읽기]김태신 '나를 사 가세요'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1.11.12 11:07

[여성소비자신문]나를 사 가세요

           김태신

                                       

작업화를 졸라맨 나를 골라요
등허리에 매달려 달그락거리는 도시락
주소도 알 수 없는 곳으로 가
하루를 비우죠
찬 새벽 시간이 갈수록
드럼통엔 자꾸 근심스러운 불꽃이 타오르고
남루하고 순박한 궁상들
낙오(落伍)라는 말
누군가의 가래침 되어 길바닥에 떨어진다

벼르고 별러서 동여맨 결의
생선 상자는 타고
불의 속내를 바라보며
열고 닫히는 빗장
뒤주 속 같은 인력시장
연기와 불꽃과 바람과 나무의 순서가 바뀌고
공복의 한낮이 두려워요
사 가세요 데려가세요
알을 쏟아버린 연어처럼 지쳐가는
나의 청춘을

나를 팔아야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가정해본다. 무엇 때문에 소중한 나를 인력시장에 내놓고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김태신의 시 「나를 사 가세요」에는 작업화를 졸라매고 하루 일자리를 찾아가는 젊은이의 결의가 담겨 있다. 그는 어딘지 모르지만 팔려 가는 곳에서 땀 흘려 하루를 잘 쓰려고 한다. 자신의 노동력으로 돈을 벌어야 하루를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 차디찬 날씨를 데우는 드럼통엔 나무토막이 활활 타오르는데 팔리지 않는 나는 “공복의 한낮이 두려워요/사 가세요 데려가세요”라고 마음 졸이며 간절히 일자리를 구한다. 일 할 수 있는 곳으로 팔려가지 않으면 하루를 쫄쫄 굶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일꾼은 많은데 일자리가 적다면 노동력이 쉽게 팔리지 않을 것이고, 임금도 낮을 것이다. “작업화를 졸라맨”의 구절에서 시적 화자는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할 의지가 있음을 드러내 보인다. 그러니 제발 나에게 일을 달라고 ‘나를 사 가라’고 외친다. “뒤주 속 같은 인력시장”에서 그날그날 쉽게 팔려가고 싶은 일용 근로자의 절박하고 고단한 삶을 이 시에서 만나게 된다. 노동은 신성한가. 노동을 할 권리는 어디에 있는가?를 이 시는 조용히 묻고 있는 것 같다.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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