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만개한 유모차

​박설희

마을회관 앞마당

신발보다 더 신발짝같이

할머니들이 벗어놓았다

쓸쓸한 직립을 기대고

일상의 무게를 덜어온 유모차

바퀴가 제멋대로 뒤틀려 있다

자그만 돌부리에도 삐걱삐걱 중심을 가눈다

​

떠난 것들의 흔적 가득한

텅 빈 둥지

바람이 뒤흔들다 간

낡고 바랜 의자에

햇볕이 늘어지게 쉬고 있다

지상엔 도닥도닥 잠재울 것투성이

끝없이 솟아나는 걱정거리

눈뜨기 전부터 달려드는 불안을

다 흩뜨려두고

연신 까르르 터져 나오는 웃음

볼그레한 노을 번진다

다들 모이니

올 한해도 그럭저럭 지낼 만한 것 같다고

유모차를 끌어보지 않은 할머니들은 아마도 안 계실 것이다. 젊은 새댁 시절 아기를 업고 안고 기르신 분들도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는 손주를 유모차에 태워 놀이터를 오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박설희 시인의 시 ‘만개한 유모차’는 우선 할머니들 자신이 유모차를 타고 마실 다니는 광경을 연상하게 한다. 할머니의 다리처럼 뒤틀리고 삐걱거리는 유모차에 의지해 여기저기 다니시며 날마다 마을 회관에도 출석하시곤 한다. 시인은 할머니들이 마을회관 앞마당에 “신발보다 더 신발짝같이”신발을 벗어놓았다고 묘사한다.

급하게 또는 산만하게 늘어 놓은 신발들 같기도 하고, 닳고 해진 신발들이 짝을 맞춰 가지런히 놓여진 신발 수선 집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 늘어선 삶들이 경로당 안방에 모여들 있지만 깊이 들여다보기 어렵다.

밖에서 살짝 엿보면 수수께끼처럼 더욱 궁금하고 흥미롭다. 신발들 그 옆에는 아기가 실컷 타고 떠난 “텅 빈 둥지”, 이제는 할머니가 지팡이 삼아 끌고 다니는 “낡고 바랜 의자에/ 햇볕이 늘어지게 쉬고”있다며 잠시 헐렁하고 편안한 시간을 전해 준다. 유모차도 낡고 빛바랬지만 새 주인, 할머니도 동고동락하는 처지라서 서로 잘 어울린다.

눈을 떠서 하루해가 질 때까지 할머니들 삶 곁에는 아직도 “도닥도닥 잠재울 것투성이/끝없이 솟아나는 걱정거리”와 불안이 달려든다. 하지만 그 걱정, 근심, 불안 모두 그대로 놔두고 함께 모여 있으면 “연신 까르르 터져 나오는 웃음”들이 천진난만한 노을처럼 번져 오른다.

한 생애의 삶의 이야기를 가득 싣고 다니는 박설희 시인의 시 ‘만개한 유모차’는 “다들 모이니/올 한해도 그럭저럭 지낼 만한 것 같다고” 흠뻑 즐거워한다.

아기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삶의 여정이 유모차에 실려 날마다 만개하고 있다.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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