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J에게

J 스치는 바람에 J 그대 모습 보이면

난 오늘도 조용히 그댈 그리워 하네

J 아름다운 여름날이 멀리 사라졌다 해도

J 나의 사랑은 아직도 변함없는데

J 난 너를 못 잊어 J 난 너를 사랑해

J 우리가 걸었던 J 추억의 그 길

난 이 밤도 쓸쓸히 쓸쓸히 걷고 있네

 

J 지난밤 꿈속에 J 만났던 모습은

내 가슴 속 깊이 여울져 남아있네

J 아름다운 여름날이 멀리 사라졌다 해도

J 나의 사랑은 아직도 변함없는데

J 난 너를 못 잊어 J 난 너를 사랑해

J 우리가 걸었던 J 추억의 그 길

쓸쓸히 걷고 있네

1984년 7월 29일 춘천시 남산면 남이섬. 제5회 MBC 강변가요제가 열렸다. 대학 1학년생 이선희는 같은 학과 선배 임성균과 ‘4막5장’이란 이름으로 무대에 올랐다. 노래제목은 ‘J에게’, 작곡·작사자는 이세건(1958년생). 그날 이선희는 이 노래로 대상을 받았다. 무명의 작곡·작사가 이세건과 대학신입생 이선희가 일궈낸 역작이었다. 작은 체구(158cm, 46kg)에 안경을 낀 그녀의 가창력은 대단했다. 해맑고 높은 음정에 가슴 속을 파고드는 애잔한 노랫말이 대중을 사로잡았다. 4분의 4박자, 슬로우고고풍으로 제목이 특이했고 가사도 좋았다. ‘J에게’는 가요제 후 방송을 타면서 갑자기 빅히트곡이 됐다.

‘J에게’로 가요계에 데뷔한 이선희는 정규음반 한 장 없이 이 노래로 ‘KBS 가요톱텐’에서 5주 잇달아 1위를 해 골든컵을 받았다. △1984년 KBS 가요대상 신인상 △1984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가요상, 신인상, 10대 가수상으로 최초 3관왕에 오르는 등 데뷔 첫해부터 폭발적 인기를 모았다. ‘J에게’는 이선희의 1집 음반 ‘아! 옛날이여’(1985년)에 실리면서 연일 상종가를 쳤다. MBC-FM에서 ‘J에게’가 하루에 16번 방송되면서 ‘FM라디오 하루 최다방송횟수’ 기록을 세웠다. 원로가수 최희준(작고)이 1986년 KBS 1TV ‘가요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양준일, 이선희의 제자인 가수 이승기가 남성버전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노래와 같은 제목의 영화도 만들어졌다. 1986년 12월 13일 개봉된 ‘J에게’(감독 김청일)엔 윤승원, 박순천, 남궁원 등이 출연했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노래’가 ‘보물’로 우뚝

짧은 시간에 빅히트한 ‘J에게’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이선희가 TV에 출연, 들려준 노래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한 작곡가 사무실에서 악보가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 속에서 건져냈다는 일화가 그것이다.

‘버려진 노래’가 ‘보물’이 됐다는 얘기다. 사연은 이선희의 여고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고2 때 가수가 되고 싶어 유명가수 장욱조의 서울 남영동 음악사무실을 찾아 오디션(노래테스트)을 봤다. 결과는 좋았다.

그러나 교습비를 내기 어려워 발을 돌려야했다. 그는 그때 한 무명의 작곡가가 쓰레기통에 악보를 버리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됐다. 이선희는 악보를 주워 멜로디 라인이 괜찮은 것 같아 그 작곡가에게 “이거 제가 불러도 돼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작곡가는 “맘대로 하라”고 했다. 이선희는 주운 악보를 2년간 갖고 있었다. 그러다 기회가 왔다. MBC강변가요제에 이 노래로 출전신청을 한 것이다. 그는 예선에서 이 노래를 불러 1차 관문을 넘었다. 같은 대학의 선배들은 아마추어실력의 자작곡으로 예선접수를 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이선희는 그 선배들에게 자신의 예선통과를 알리자 “이름이라도 올릴 수 없느냐”고 해 ‘4막5장’이란 팀으로 가요제에 나가 대상을 받았다. 노래발표 후 알려졌지만 악보를 버린 사람은 이세건 작곡가였다. 이선희는 가요제 후 원저작권자인 이세건에게 노래저작권을 돌려주고 저작권료도 줬다.

궁금증 자아낸 노래제목도 인기에 한몫

‘J에게’는 제목도 인기에 한몫 했다. “도대체 J가 누구냐?”는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J에게’가 발표될 때만 해도 영어이니셜이 제목과 가사에 나오는 노래는 별로 없었다. J를 놓고 팬들 추측은 여러 갈래였다.

ㅈ이나 J자로 시작되는 성씨의 연인이거나 가까운 벗일 것이란 말이 많았다. 존경하는 선생님, 선배, 연예계실력자를 나타냈을 것이란 설도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조씨, 정씨, 주씨 등 ㅈ자가 들어가는 성씨일 테고 외국인이면 존, 제니 등 영문자 J로 나가는 인물일 것이란 말들이 돌았다. 그런 가운데 노래의 인기는 날로 더해갔다.

그 무렵 한 여성잡지사가 신입사원을 뽑을 때 이 노래를 소재로 한 시험문제를 내 화제가 됐다. 사원모집 2차 시험에 히트곡 ‘J에게’의 실제주인공이 있을지도 모르니 취재해오라는 내용이었다. 여성지 입사시험에 나올법한 시의성있는 문제이긴 했으나 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 잡지사가 인기 있는 직장이어서 응시자들은 답 찾기에 안간힘을 썼다.

아는 사람들을 동원, J가 누군지 알려고 했지만 막막했다. 급기야 언론사 연예담당기자들과 가요계사람들을 통해 작곡·작사가 찾기에 이르렀다. 몇몇은 이선희를 찾아가 “J가 누구냐?”고 물었다. 난데없는 방문자들 질문에 이선희는 난감했다. 한 응시자는 “꼭 알려달라”며 읍소까지 했다. 돌아가지 않고 버티는 응시생에게 그는 두 손을 들고 어쩔 수 없이 말문을 열었다. “노랫말을 만들다보니 발음하기 좋은 J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는 게 전부였다.

이런 내용이 한 주간지 기자의 안테나에 걸려 보도됐다. “뭐가 있긴 있구나!”하고 추측취재를 한 기자는 ‘J는 가수 이선희의 첫사랑 인물이고, 그의 이름은 J로 시작된다’고 보도했다. 연예란에 실린 그 기사는 관련 인물만화까지 곁들여져 그럴싸하게 보였다. 졸지에 연예특종기사가 됐고, 그 내용을 본 한 월간잡지사는 특집까지 실었다.

J에 대한 궁금증은 한참 뒤에 풀렸다. 노래를 만든 이세건과 관련 있었다. 신예 작사·작곡가였던 이세건은 부모가 음악 하는 것을 반대하자 집을 나와 버렸다. 총각이었던 그는 노래공부를 위해 가까운 친구집에서 먹고 자며 쓸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노래발표 한 해 전인 1983년 가을 어느 날 스산하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독일로 문학공부를 위해 훌쩍 떠난 친한 친구 생각이 났다. 그 친구는 이세건에게 편지를 보낼 때마다 ‘보고 싶은 L형’이라며 현지생활의 외로움을 적었다.

이씨는 친구를 생각하니 먼 기억 속의 그리움이 밀려와 몹시 보고 싶었다. 그는 피아노에 앉아 친구얼굴을 떠올리며 멜로디와 노랫말을 만들었다. 이어 제목을 어떻게 붙일까 고민했다. 친구가 편지머리에 썼던 영어이니셜(L)이 떠올랐다.

‘L에게’를 노래제목으로 잡았지만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발음이 부드러우면서도 글자모양이 예쁜 영문자 J가 생각났다. ‘J에게’ 노래제목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J는 멀리 떠난 짝사랑 친구를 그린 상징적 표현이다. 맨 처음 잡았던 노래제목 ‘L에게’는 그렇게 해서 ‘J에게’로 바뀌었다.

이선희, 서울시의회 의원 활동

‘J에게’로 히트가수가 된 이선희는 1964년 보령시 주산면 황율리에서 1남3녀 중 맏이로 태어나 신광여중, 상명여고, 인천전문대(환경관리과)를 졸업했다. 맑은 고음, 엄청난 성량, 정확한 리듬감을 가진 그는 히트곡이 많다.

‘아! 옛날이여’, ‘나 항상 그대를’, ‘한바탕 웃음으로’, ‘달려라 하니’, ‘아름다운 강산’, ‘인연’, ‘그 중에 그대를 만나’ 등이 대표곡이다. 2011년엔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단독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2018년엔 남측 가수를 대표해 평양에서 조용필 등과 공연을 펼치는 등 ‘국민가수’로 사랑받고 있다.

최근엔 ‘OST(드라마·영화 삽입곡)계 대모’란 소리를 들을 만큼 드라마OST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사회활동에도 열심히 이어서 불우이웃돕기는 물론 제3대 서울시의회 의원으로 당선되는 등 당찬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학로 라이브극장 대표, 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 마포지회 명예회장, 대구 계명문화대 교수 등으로 활동했거나 뛰고 있다. 싱어송라이터인 그는 여성팬이 많아 ‘언니부대’ 최초가수다. 지난해 6월 정규음반 16집의 ‘파트 1’을 발표하고 가을에 ‘파트 2’를 선보였다. 그러나 그의 결혼생활엔 굴곡이 있었다. 1992년 음반제작자인 해광기획 대표(윤희중)와 결혼, 딸까지 낳았으나 1998년 갈라섰다. 2006년 9살 많은 재미사업가와 재혼했지만 지난해 2월 말 또 다시 이혼해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슬하엔 1993년생 딸(윤양원)이 있다.

이세건 작곡가는 ‘J에게’를 통해 이름을 본격 알렸다. 민해경의 히트곡 ‘사랑은 이제 그만’, ‘그건 소문’, ‘사랑일기’ 등과 1989년 가수 윤태규의 1집 음반 ‘이별의 거리’, ‘새벽바람개비’ 등을 작곡했다. 임창정 1집 음반을 프로듀싱했고 수록곡 ‘너를 만나게 한 바다로’, ‘기억할 수밖에 없는 너’, ‘블루파티’와 ‘이미 나에게로’, ‘거짓 같은 진실’ 등 여러 명곡들을 만들었다.

한지안 기자  hann92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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