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두레박

                             김태신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날도

태어나 한 번도 쉬어 본 적 없는

바람을 생각하면

새싹에서 고목으로 오롯이 직립으로 견디는

나무를 생각하면

물살 박차고 오르며 숨 가쁜 역류를 날뛰는

물고기를 생각하면

끊임없이 生하고 滅하면서도 존재를 이어가는

미물들을 생각하면

어두운 땅 속 실뿌리에서 체관을 열어

잎맥을 따라 물이 올라

꽃술 끝에 피는 향기를 생각하면

온몸을 기울여

춤추며 길어 올릴 넘치는 삶이여

누구나 특별한 일 없이 그날이 그날인 것처럼 사는 날들도 많다. 삶의 구석엔 그런 일상들이 존재하며, 그 사이 사이에 닥쳐오는 굴곡진 기쁨과 슬픔은 나름의 무늬로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김태신 시인의 시 ‘두레박’을 읽노라면 사람 이외의 다른 것들의 생태를 생각해 보게 한다. 바람과 나무, 물고기, 미물들, 그리고 꽃향기, 모두들 태어나 살고 죽는 흐름의 연속이 출렁이고 있다.

그런데, 시인이 느끼는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날”은 어떤 날일까? 아무런 변화도 없이 그날이 그날 같은 무료하고 답답한 날? 미래가 보이지 않는 날? 아니면 너무 힘들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날일까? 시인은 그냥 주변을 돌아보라 눈짓한다.

바람은 태어나 한 번도 쉬어 본 적이 없고 나무는 한 곳에서 평생을 서서 살며, 살기 위해 온몸으로 물살을 헤치고 숨 가쁘게 역류하는 물고기들도 있다. 존재도 없이 낳고 죽는 미물들도 허다하다. 온갖 풍상을 견디고 꽃을 피워 마침내 향기를 뿜어내는 꽃들도 있다.

한 뼘 기댈 곳도 없는 가파른 환경 속에서 묵묵히 본분을 다하는 생명들이 참으로 위대하지 않은가.

그에 비해 우리들 하루는 얼마나 자유롭고 풍요로운가. 우리들 삶에는 길어 올릴 수 있는 샘물이 있지 않은가. 그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날들인가. “온몸을 기울여/ 춤추며 길어 올릴 넘치는 삶이여” 샘물이 마르도록 두레박줄이 닳도록 겸손하게, 날마다 새 삶을 길어 올려야 하리.

구명숙 숙명여대 명예교수  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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