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최근 몇 년 동안 지구 곳곳에서 걱정스레 나누는 빈번한 화제 중의 하나가 ‘지구가 겪는 재앙’이다. 남극과 북극의 급속한 기온 상승, 그로 인한 기후변화가 초래한 가뭄과 큰 산불 및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재난과 인명 손실, 황사와 미세먼지로 인한 각종 질병에 이어 전 세계인을 공포로 몰아가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 등이다.

세계 어느 곳 하나 한 시도 평온한 일상을 누릴 여유가 없어 보인다.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소득증대, 편리한 삶, 늘어나는 수명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내일의 변화와 불확실성에 답답하고 초조하여 불안과 걱정이 늘어가고 있다. 재난에 잘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과 원망도 늘어가고 있다.

정권취득이 목표인 정치인들로서는 어떻게 하든 득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상황변화나 투표자들의 취향에 따라 과학을 자신들의 목적에 활용하려든다. 즉 과학의 정치화를 시도한다. 이에 반해 우주와 자연의 변동을 이해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과학자들은 자료와 증거에 근거하여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려 한다. 따라서 많은 경우 과학과 정치는 갈등관계로 대치 상황에 처한다.

세계적인 저명 과학기술지 ‘네이처(Nature)’는 2012년 9월 어느 사설에서 ‘과학과 정치는 잘 어울리는 짝이 아니라 서로 불편한 관계(uneasy bedfellow)’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과학은 증거와 객관성에 근거하지만 정치는 주장과 설득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과 정치의 불편한 관계는 전 지구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2019년 말 중국 우한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급속히 통제불능 상태로 번진 것은 중국 공산당이 의학 전문가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감추려 한 것이 가장 주된 원인이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 더하여 중국정부에 우호적인 거부러이여수스(T. A. Ghebreyesus)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역시 중국의 정치적 주장에 편승하여 사태를 축소하려 시도 하였기에 전 세계적인 사태로 빠르게 확장 되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그는 코로나 발생의 기원으로 우한 실험실의 바이러스 유출 가능성을 제기한 서방 세계의 주장과 중국 실험실 감사에 동조하지 않았으나 그 후 미국 대통령의 강력한 주장에 태도를 바꾸는 과학의 정치화를 보이고 있다.

세계 과학을 선도하고 있는 서구와 일본에서도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정치와 과학의 불편한 관계가 더욱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평소 과학계의 주장에 냉소적이고 지구 환경변화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미국의 전 대통령 트럼프(D. J. Trumph)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감에 따른 정치적 의사결정으로 미국을 코로나 팬데믹의 최대 재난국으로 몰아넣었다. 그 결과 이어진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민주당의 바이든(J. R. Biden) 후보에게 패하고 말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과학중심’ 정책을 내걸고 “우리는 소설보다 과학을 택합니다”라고 선언하였다. 브라질의 보우소나루(J. M. Bolsonaro) 대통령 역시 “바보들이나 마스크를 쓴다” 면서 방역을 소홀히 한 결과 브라질 국민들이 코로나 감염의 재앙에 빠지게 되었고 그는 현재 탄핵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

일본의 아베 수상 역시 올림픽 경기 흥행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과학계의 의견을 무시한 채 정치적 판단을 한 결과 일본이 방역 실패국이 되었고 결국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과학 및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기울이며 과학적이고 객관적 증거를 활용한 방역정책을 수행한 독일과 대만은 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시켜 나가고 있다. 특히 과학자 출신인 메르켈(A. D. Merkel) 독일 총리는 과학적 자료에 근거한 의사결정과 국민소통으로 코로나 팬데믹의 피해를 최소화하였기에 독일 국민들의 존경받는 지도자로 임기를 마쳤다.

대만 또한 과학을 활용한 정치로 칭송을 받고 있다. 중국 우환 폐렴 소문이 흉흉하자 위생복리부를 컨트롤타워로 하고 39세의 젊은 오드리 탕(A. Tang) 디지털 장관을 중심으로 전염병 지휘센터를 조직하여 ‘국민의 집단 지성’을 활용한 신속한 대처를 단행하였으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백신개발에도 성공한 우수 방역 국가가 되었다.

과학을 경시한 국정 운영이 우리나라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가져오고 있다. 중국 우한시에서 발생한 괴질의 소식에 많은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중국인의 입국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음에도 정치적 배려가 우선시 되었다.

특히 우한 시민들의 입국으로 인하여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바이러스 수퍼전파국으로 전락되었다. 그 후 과학적 사고에 익숙한 우리 국민들의 수준 높은 방역 의식과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감염의 확산은 진정되는듯 하였으나 여전히 이념과 정치적 배려가 우선되는 정치 방역으로 효과적인 방역이 어려워지고 경제적 고통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게다가 백신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과학계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재난 구호라는 명목의 지원금 나누기에 묻혀버린 결과 뒤늦은 백신구매로 인하여 백신 공급이 어려운 백신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과학이 무시되는 정치가 불러온 재난이다. 어긋난 과학과 정치관계로 인한 미래의 불안은 탈원전 에너지정책에 있어서도 심각하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원자력발전에 대한 불신 때문에 우리 정부는 원자력발전소의 경제성을 조작해 가면서 까지 무리한 탈원전을 추진해 왔다.

유럽연합(EU)의 합동연구센터는 최근 ‘원자력 환경영향평가’라는 보고서에서 ‘원전 가동이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해상풍력 발전과 비슷한 수준이며 환경 및 건강에 끼치는 영향은 일부 재생 에너지와 비슷하거나 우수’ 하다고 주장했다.

즉, 원전이 녹색 에너지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탈원전에 대한 대안으로 태양광발전을 장려하여 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 놓은 임야와 전답을 훼손하고 있다. 기후 변화에 따른 폭염과 전기차 운행증가 등 산업용 에너지 수요가 급등하자 정부는 정비 중인 원자력발전소의 재가동을 서두르느라 허둥대고 있다. 과학을 무시한 채 과감하게 진행하는 탈원전은 미래의 에너지 수요 증가에 대비해 볼 때 과학 기술 발전과 경제 성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탄소발생 저감 즉 탄소중립대책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과학이 정치에 앞서거나 우선시되기는 어렵다. 국가나 세계적인 복잡하고 난해한 가치체계 및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 정치적 의사결정이다. 아무리 객관적이고 독립된 과학적 증거라 할지라도 이는 부분적이며 오류의 가능성도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나 국가의 미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복잡하고 불확실성이 큰 정책이나 사안들이 객관성에 근거한 과학적 증거가 무시된 채 정치 집단이나 지지 세력의 주관적인 가치관이나 근시안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된다면 이의 결국은 불행이다. 과거나 현재 겪고 있는 수많은 사례에서 보듯이 과학이 정치를 우선할 수 없더라도 과학을 무시한 정치가 재앙을 초래한다. 정치가 과학과 기술을 중시하고 적절하게 활용할 때 불확실성과 재난을 최소화 하고 국민들의 삶이 더 나아지는 국정운영이 될 수 있다.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kkucwka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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