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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정치연구소 김은주 소장 "여성 정치 운동 30년, 여성정당 창당 큰 의미...남은 과제는 동수헌법개정"
한지안 기자 | 승인 2021.07.28 10:12

[여성소비자신문 한지안 기자] 한국여성정치연구소 김은주 소장은 여성의 정치참여와 대표성 확대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온 인물이다. 여성 청년·북한이탈여성·결혼 이주 여성들의 정치 역량 강화를 위한 민주주의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지난해에는 여성의당 창당을 추진하며 ‘청년들이 목소리를 낼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여성소비자신문이 김 소장을 만나 지난 30년의 여성 정치 운동 성과와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들어봤다.

김은주 소장 <사진=여성소비자신문>

-한국여성정치연구소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는 1990년 3월에 현재의  손봉숙(17대 국회의원) 이사장님이 설립하고 10년동안 소장으로 활동하셨다. 그리고 올해로 31년째를 맞고 있다. 설립 목적은 여성 정치 세력화를 통해 여성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여성문제 해결에 필요한 정책을 연구하거나, 또 여성 후보자를 발굴해서 교육시키거나, 국제적인 인적 교류를 하는 등 다양한 활동들을 해왔다.

첫 번째로 여성과 선거에 관한 연구를 정례적으로 해오고 있다. 여성권익 및 성평등정책 관련 연구들이 있고, 두 번째 활동으로는 차세대 여성 리더들을 발굴해서 교육시키는 것이 있다. 국회 여성 보좌진 교육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거의 20년 가까이 했다. 그리고 2008년부터는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국회의원 선거를 목표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민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결혼 이주여성에 대한 ‘의원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때 교육에 함께 했던 이자스민 교육생이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받아서 최초의 이주여성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뒀고, 또 2010년부터는 탈북 여성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또 남북한 여성이 반반 함께 모이는 평화하나 여성둘 포럼을 만들어서 탈북 여성들이 남한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도록 지원해주는 큰 역할들을 해왔다. 한 달에 한 번씩 세미나를 통해 여성 가족 관련된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여성가족부나 국회의원, 청와대 여성가족 비서관 등 다양한 정책 결정 단위에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네트워크를 통해 탈북 여성 문제를 여성주의와 가족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에 여성가족부가 탈북 여성의 권익 증진을 위한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해당 모임도 평화나 여성 포럼을 넘어 민주시민 교육 프로그램으로 확장되는 성과를 거뒀다. 지금까지 매년 15명 정도가 그 프로그램을 통해 모여서 민주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성찰해 보는 그런 시간들을 갖고 있다.

세 번째로는 국제 인적 교류가 있다. 90년대 초중반에는 유엔ESCAP과 공동으로 국제회의를 개최하여 여성할당제 도입 촉구 등의 내용을 담은 서울선언문을 채택하였다. 독일과는 기독교사회당의 정치단체인 한스자이델재단 한국사무소의 파트너 단체로서 다양한 한독여성교류를 추진해왔다. 특히 지방의회 의원들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지방의회 의원이 된 여성들과 함께 지방자치 연수를 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독일 지방자치와 지방 정부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다양한 여성 가족 관련된 정책들을 탐방하는 그런 프로그램들을 진행한 바 있다. 현재 국제 교류 프로그램은 ‘북한 여성 사회 연구 국제학술 대회’를 작년부터 개최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상당히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시장화고, 거기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집단이 여성이다. 여성이 주도해 나가는 시장화이기도 하고. 그래서 북한 여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북한 사회가 앞으로 어떤 변화를 하게 될 건지 등에 관심 있는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들을 발표할 수 있도록 매년 8월에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도 8월 24, 25 이틀간에 걸쳐 줌을 통해 진행할 예정이다. 작년에는 북한의 시장화, 여성 그리고 문화였고 올해에는 ‘코비드 시대, 북한 여성의 미래: 위기 or 기회’라는 주제로 한국, 호주, 일본, 미국 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북한 청년 문제와 환경문제에 페미니즘 관점이 필요하다고 말씀해오고 계시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페미니즘 관점이라는 게 무엇인가를 먼저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페미니즘이란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 폭력에 대한 원인을 성찰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페미니즘 관점으로 지금의 우리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접근한다는 것은 관련 정책 과정에 젠더에 의한 차별이나 불평등이 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투영하는 거라고 생각을 하면 된다.

특히 북한문제나 환경문제에 대해 페미니즘적 접근은 필요하다는 것은 그동안 여성주의적 접근이 미흡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 청년문제를 포함한 북한문제에 대해 페미니즘적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가지 이유를 갖는다. 하나는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장화가 여성들의 주도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자영업을 할 수 있는 자격이 기혼여성들에게만 부여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북한주민들이 남녀평등을 달성했다고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받았다는 데 있다. 북한 이데올로기 안에서는 남녀불평등이나 차별은 불가능하다.

환경문제에 대한 페미니즘적인 접근도 인류라는 종의 멸종위기가 예측되는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발과 폭력이 만들어낸 현재의 기후위기 등 전지구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여성들의 관심과 참여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차별과 불평등의 대상은 여성일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각각의 영역에 일어난 다양한 문제들을 약자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곧 여성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김은주 소장 <사진=여성소비자신문>

-여성정치분야에서 거의 30년 동안 활동하셨다. 30년 전과 비교해 현재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저는 시간은 그냥 흐르지 않는다고 본다. 지난 30년의 시간은 그냥 흐르지 않았다. 여성의 지위라든가 특히 여성 정치 세력화라고 하는 이 부분의 성과는 흡족하고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소평가할 만한 것도 아니다.

1991년에 지방자치가 30년 만에 부활되면서 처음으로 치러진 선거가 있었다. 당시 ‘생활 정치’ 과 ‘여성 정치의 장’으로서 지방의회라는 문제의식 하에서 여성정치참여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높았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출마하려는 여성들이 상당히 적었다. ‘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동의하는 여성들은 많았지만 실제로 그 정치의 장에 참여해서 선거를 한번 치러보겠다는 여성들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선거 결과도 0.9%에 그쳤다.

여성정치참여확대 즉 여성대표성 확대를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거 후 1994년에 54개 여성단체들이 모여서 할당제도입을 위한 범여성모임을 만들고 여성 할당제 도입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들이 모여서 각 정당이 자발적으로 할당제를 도입할 것과 선거 공영제 도입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선거 공영제라고 하는 것은 선거 운동 비용을 국가가 보전을 해 주는 것이다. 이전의 선거는 개인이 비용을 다 내는 구조이다 보니 금권 정치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고, 정경유착이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여성들은 돈도 없는 데다 조직도 약하니 당연히 후보로 나설 엄두를 못냈다.  당시 여성계가 여성의 정치참여를 확대시키기 위해 여성 할당제 도입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선거 공영제였다.

선거 공영제는 1995년에 선거법이 전면적으로 개정되면서 도입 됐다. 15% 이상 득표를 한 경우 선거에 꼭 필요한 선거 운동에 대한 비용을 국가가 보존하다 보니 여성들도 정치를 한 번 해봐야겠다고 엄두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에는 여성할당제 도입을 위한 운동들이 계속 전개됐고, 그렇게 2000년 16대 국회 때 비례대표 30%로 시작하게 됐다. 그 다음 17대 때는 비례대표 50% 지역구 30% 등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여성할당제 골격을 세웠다.

또 지금의 여성가족위원회의 전신인 여성특별위원회를 만든 것도 성과다. 지금 여성가족위원회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국회 내에 여성 가족과 관련해 국정감사에 참여하고 법안을 독립적으로 다룰 수 있는 그런 조직이 없었다. 여성계가 청원을 통해 여성 특별위원회라고 하는 걸 국회에 만들었다.

이런 과정에서 여성 정치 세력화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들이 더욱 확산되어, 여성정치관련 단체만이 아니라 다른 이슈들을 다루는 여성단체들도 중앙과 지역에서 여성 후보 및 유권자 교육을 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유권자들의 여성 정치에 대한 인식들이 점점 나아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의 성과가 빠르게 나타나면 상당히 좋겠지만, 어쨌든 양적으로 보면 지방 의회 같은 경우는 여성의원 비율 0.9%에서 출발해 지금은 기초 30%, 광역 19%를 넘겼다. 국회의원 같은 경우도 90년대 에는 2%였으나 이제는 19.7%로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국회에 들어가는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지방의회도 마찬가지로 여성 의원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여성, 가족, 소수자 내지는 약자와 관련된 법률과 조례들이 늘어났다. 지난 16대 국회에서부터 20대 국회까지의 국정감사 질의를 분석했는데 여성과 가족 아동,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질의는 여성의원들이 주도적으로 했다.

이렇게 여성 의원들이 양적으로 제도적으로 늘어나면서 입법에 있어서도 상당히 많은 변화를 갖고 왔고, 이 변화가 우리 사회 국민들의 삶의 다양한 부분에 대한 변화를 만들어 왔다고 생각한다. 30년 전에 생각할 수도 없던 정책들을 지금 하고 있지 않나.”

-지난해 3월 여성의당 출범할 당시 창당 준비 위원장으로 활동하신 과정에 대해 듣고 싶다. 소장님께서 말씀하시는 ‘여성 대표성 확대’를 직접 실천하신 활동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또 창당과정에 어려움은 없으셨나.

지난 20대 총선 직전에 패스트 트랙에 실었던 공직선거법상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이름으로 도입됐다. 여러 이유로 비례대표 100석의 연동형 100%가 아니라 47석의 50%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상당히 많이 축소되기는 했지만, 그걸 계기로 많은 단체들이 정당을 만들기 시작을 했다. 저도 그 과정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 이 정도 되면 여성주의나 여성 의제만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도 필요하다’.

그래서 제가 소속된 헌법 공부 모임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통과되는데 여성당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제안을 했고, 그랬더니 거기에 계신 모든 분들이 전적인 동의를 해 주셨다. 그렇게 창당의 운을 띄우긴 했는데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어려움이 예측되는 일이라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3월 8일까지 5개시도 당에 5000명의 당원을 만들어야 하는 반면 시간은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상 두 달밖에 남아 있지 않은 시간 동안에 모든 걸 끝내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나라 페미니스트 1세대 모임인 ‘여해 여성 포럼’에서 여성정당 창당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1월 초 이분들과 모임을 가졌다. 여성의당 창당과 관련해 ‘당신이 아이디어를 냈으니 구체화된 계획이나 방법론 등을 듣고 싶다’고 하셔서 ‘이러이러한 방법이 있지만 우리는 시간과 조건의 제약 때문에 사실상 쉽지 않다. 어렵다’ 라고 얘기를 해드렸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걸림돌은 이 정당을 만들어 나갈 주도 세력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지난 30년간 여성계에게 있어 여성정당은 늘상 꿈꾸던 것이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건 정치권만이 아니라 여성단체를 포함한 시민사회도 양 진영으로 나뉘어졌기 때문에 여성주의와 여성문제만을 중심으로 정치적 활동을 추진할 제3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양 진영을 초월한 제3의 진영으로 올 5000명을 모으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렇게 말씀을 드렸더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모여서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것이었다. 2월1일에 여해여성포럼에서 세미나를 개최했고 기성 여성단체 하는 분들, 학자, 청년여성 등이 참여했다.

마침 그때 젠더 정치 연구소 여세연에 대표를 했었던 이진옥 대표가 대구에서 청년여성 그룹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다고 했고, 저도 그들을 만나러 갔었다. 여성정당의 창당을 주도해 나갈 사람들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성정당 창당에 대해 청년여성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혹 청년여성들이 제3세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심한 기대감을 갖고 대구로 내려갔다.

당시 대구에 전국에서 여성 정치에 관심이 있는 한 70여 명이 되는 20대들이 모였는데, 저는 그날 너무 충격을 받았다. 제가 여성 정치 교육을 30년 하면서 그렇게 집중력 있게 강의를 듣고 있는 그룹을 처음 봤기 때문에. 저들에게 과연 여성 정치가 뭘까, 뭐길래 저렇게 절박하게 강의를 듣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절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강의 이후에 간담회에 참여 하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저는 30년 동안 여성 세력화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고, 많은 제도들을 만들고 법을 만들어내고 또 여성 의원들을 키워서 의회로도 내보내고, 단체를 만들기도 하면서 적어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성들을 키워서 적지 않은 사회 변화가 생기도록 해왔다고 생각을 했는데, 20대 초반, 10대 후반의 디지털 SNS세대 여성들이 겪고 있는 불평등과 폭력은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영역이었던 것이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제가 지난 30년 동안 변화시킨 만큼 이 아이들의 삶도 다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는 게. 그날 그 아이들이 뱉어놓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었고 너무 미안했다. 우리 딸이 그 또래인데 그동안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니었나, ‘나는 바쁘게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어’하는 생각에 만족했던 게 아니었나 싶었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모임 중에 제가 (여성정당을 만들고 싶으나) 이런 어려움도 있고 저런 어려움도 있고 그렇다 말 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선배님께서 안 만드시면 저희가 만들 거예요”하더라. 그러면서 가능성도 봤다. ‘혹시 이들이 주도가 되면 어느 진영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주체니까 뭔가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겠나’하는 기대, 희망 같은 것이었다.

여성의당은 그들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대 30대의 젊은 청년 여성들이 거리가 아닌 정당 안에서 그리고 정당을 통해 기득권 정치세력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2월 1일 여해여성포럼에서는 여성정치세력화를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서 여성정당의 창당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공감했고 여성정당 창당에 대해 24명의 여성 지도자들이 동의를 해줬다. 이후로 여성의당 창당에 지지하는 여성들을 모으기 시작한지 사나흘 만에 한 5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2월 15일 날 발기인 대회를 했고, 발기인 대회 끝나고 만든 워크숍에서 경기·인천·서울·경남·부산 당을 만들겠다고 하는 주도적인 사람들이 나타났다. 2월 15일 발기인 대회 끝나고 열흘 만인 2월 25일 마지막 경기도당이 만들어지면서 각 정당마다 1000명 이상의 당원들이 모였다.  그렇게 각 시도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승인을 받고 마지막 3월 8일 날 중앙당 창당대회를 했던 거다.

저는 그 모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2030 청년 여성들의 분노였다고 본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터졌던 시기에 저희가 창당을 준비했는데, 그 사건에 대해 20대 국회 남성 의원들이 “남자들이 커가면서 겪는 성장통”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런 기성 제도권들의 반응들에 대한 청년여성들의 분노가 여성의당의 창당의 에너지가 되었던 것 같다.”

-2022년에 대선 뿐 아니라 제 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도 예정되어 있는데, 여성의 정치 참여와 대표성 확대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지난 30년간 민선 7기까지 오는 동안에 선출된 광역자치단체장이 113명이다. 그런데 단 한 명도 여성이 없었다.

여성할당제는 기초의회, 광역의회, 국회 등 의회 선거에만 적용되고, 자치단체장 선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광역자치단체장이든 기초자치단체장이든 여성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성 할당제를 자치단체장 선거에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본다. 이 제도가 도입이 돼야만 다음번 민선제 8기에서 광역자치단체장에서 단 한 명의 여성이라도 볼 수 있는 거고. 또 기초자치단체장이 지금 8명인가 9명밖에 안 되는데 그것도 이제 20% 정도를 우리가 볼 수 있는 거고. 그래서 지금 여성계가 역점을 둬야 될 부분은 공직선거법 개정 즉 여성할당제를 자치단체장 선거에까지 적용할 수 있도록 확대하는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본다. 현재 남인순의원, 정춘숙의원, 양금희 의원 등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소장님의 향후 목표와 비전에 대해서 말씀해달라.

한국 민주화 운동 이후 30년의 시간이, 한 세대가 흘렀다. 그 민주화 운동을 이끌고 주도했던 청년세대들이 이제는 50대 후반 60대 중반이 됐다. 이제는 이 사회의 기성세대이고, 물러남을 준비해야 되는 세대인 거다.

지금의 기득권 기성 세대가 30년 전 청년 세대였던 때 가졌던 그 꿈과 도전 의식들을 지금의 청년 세대, 특히 청년 세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청년 여성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토대를 닦는 일들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런 차원에서 여성의당 창당은 한국 여성정치사에 있어서 큰 하나의 사건이지만 여성정치세력화 운동을 30년 해온 제 개인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큰 사건이다. 50대인 제가 청년 여성 세대를 위해서 뭔가 길을 만들어줘야 되는 지금 마무리해야 할 그 과제 중에 하나를 여성의당 창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은 과제가 하나 있다면 동수헌법개정이다. 동등 대표성이 민주주의 핵심 원리로서 헌법 안에 신설되는 것이다. 지난 2016년부터 여성단체 대표와 학자, 전문가 등이 모여 개헌을 위해 헌법공부모임을 조직했고, 2017년부터 2018년 제10차 헌법개정 추진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였고 그 핵심 내용 중의 하나가 동등대표성(동수) 실현이다.

1999년 프랑스 헌법 개정에서 나왔던 ‘국가는 공직 선출에 있어서 공직 선출에 있어서 여성과 남자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한다’는 메시지를 우리도 헌법적 규범으로 만들어야 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저는 그걸 헌법 제1조 3항에 신설하고자 하는데,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고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다. 국민주권주의를 천명한 것이다. 1조2항에는 주권의 소재로서의 국민과 모든 통치 행위는 국민을 위해 해야 된다는 정당성의 근거로서 국민이 있다. 그런데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인 국민의 참여다. 소위 말하면 민주주의 3원칙.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중에 ‘~에 의한’이 빠져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의 참여는 대의제, 즉 의회를 통해서 실현되어야 한다. 따라서 평등한 대의제의 원칙을 담은 새로운 규범이 필요하다. 그 원칙이 바로 1조 3항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의회의 구성원칙이 담겨져야 한다는 거다. 여성 정치 연구소가 30년 긴 역사 속에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과제는 그 헌법 제1조 3항을 신설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지안 기자  hann9239@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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