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보유기간 냉장고 8년·세탁기 6년
무상수리기간 지나면 무조건 유상수리

[여성소비자신문=강지원기자]주부 김모(38)씨는 지난 5월 세탁기가 고장 난 것을 확인하고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서비스센터에서는 고장 난 세탁기를 수리해야 한다며 수거해갔다. 김 씨는 그 후 9일이 지난 후에야 수리한 세탁기를 받을 수 있었고 열흘 동안 밀린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이웃집 자영업자 신모(52)씨는 가족들과 2박3일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사이 냉장고가 작동을 안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냉장고 안에 들어있던 음식물들은 엉망이 돼 있었다. 서비스센터에 연락했지만 서비스 대기량이 많아 5일 후에나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이 상황들을 너그러이 이해할 수 있는가?

믿고 쓴다는 대기업 제품.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AS로 실망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위 사례처럼 서비스센터에서 수거해 간 세탁기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손빨래뿐인데 이것을 소비자들이 감당할 수 있냐는 것이다. 냉장고도 마찬가지다. 며칠 동안 집을 비운 사이 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멈춰버렸다. 냉장고가 동작을 멈춘 시간 동안 그 안에 있던 김치, 채소, 우유 등 먹을거리들은 마치 실온에 놔둔 것처럼 서서히 상한다. 음식물이 상한 것은 냉장고가 고장난 탓인데 이것을 대기업에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도 소비자들의 관심사다.

지난 8월 중순경 <여성소비자신문>에 한 소비자의 전화가 왔다. 제보 내용에 따르면 소비자가 지난해 12월 국내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세탁기를 구입했는데 고장이 나서 수리를 의뢰했다. 다음 날 서비스센터 직원이 집으로 방문해 제품을 직접 수거해가야 한다고 했다. 소비자는 미심쩍었으나 하는 수 없이 세탁기를 가져가도록 했고 8일 정도 지나서야 되돌려 받은 세탁기는 수리되지 않은 채였으며 기사는 수리비와 출장비를 따로 요구하면서 제품을 교환할 것을 권했다는 것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세탁기와 냉장고의 부품보유기간이다. 지난 2011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정·발표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부품보유기간은 냉장고는 8년, 세탁기는 6년이다. 이 기간 내에 사업자가 부품을 갖고 있지 않아 수리가 불가능한 경우 정액 감가상각 후 제품 구입가의 5%를 가산해 환급받을 수 있다.

부품보유기간이라 할지라도 소비자 과실이 있을 때는 그 과실분, 즉 유상수리에 해당하는 부분은 환급금액에서 제외된다. 소비자가 보상이 아닌 다른 세탁기로 교환을 원할 때는 환급금에 준하는 물품으로 구입하거나 구입하고자 하는 제품의 가격이 그 이상일 경우 차액 지급 후 교환이 가능하다. 만약 부품보유기간이 지나면 수리가 불가능하더라도 보상은 요구할 수 없다.

소비자들은 이 ‘부품보유기간’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 공정위는 냉장고 8년, 세탁기 6년과 함께 부품보유기간을 TV는 8년, 스마트폰을 포함한 핸드폰은 4년으로 규정했다. 중요한 것은 부품보유기간을 언제부터 계산하는가다.

공식적으로 부품보유기간의 기산시점은 ‘해당 품목의 생산이 중단된 때’이다. 즉 소비자는 부품보유기간의 기산시점을 제품 생산일자나 구매일로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소비자들 “제도적 개선 절실”

소비자들이 냉장고나 세탁기 등 대형 가전제품을 구매할 때 중소기업 제품보다는 평소 광고에서 많이 접한 대기업 제품을 선호한다. 광고는 소비자들에게 일종의 믿음을 심어준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써보지 않고도 중소기업 제품보다 대기업 제품이 더 낫다고 여기는 이유다.

따라서 많은 소비자들은 결혼 혼수로도 대기업 제품을 고른다. 10년 이상 오래 쓸 제품을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제품이 3년도 채 안 돼 고장이 나거나 무상수리기간이 지났다고 해서 비용이 들거나 부품이 없어 제품을 교체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소비자들은 부당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해당 기업의 관계자들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서비스 관계자는 “보통 세탁기는 수거해가지 않는데 간혹 시간이 오래 걸릴 경우 회수해서 확인해보기도 한다”며 “냉장고의 경우 상한 김치를 기준으로 배상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품의 무상수리기간인 1년이 지나면 유상수리를 하는 것이 맞으며 이것은 소비자들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LG전자서비스 관계자는 “가전제품을 생산할 때는 고객들이 오래 쓸 수 있도록 제작하지만 간혹 예상치 못한 고장이 발생할 경우에는 최선을 다해서 수리해드리고 있다”며 “부품이 고장 났을 경우 부품보유기간이 지나면 수리가 어려워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앞으로도 대기업의 가전제품을 많이 구입할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예상된다. 공정위에서는 지난 2011년 부품보유기간과 환급 기준을 조정하고 소비자들의 불편을 최소화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바뀐 것은 부품보유기간이 각각 1년씩 늘어났다는 것과 수리 불가능시 환급 기준이다. 이 차이는 서비스 과정에서 불편을 겪은 소비자들이 체감하기는 어렵다.

한국소비자원 1372지원팀에 따르면 지난 7월 소비자 피해 상담 중 세탁기와 냉장고 서비스와 관련한 ‘가사용품’에 대한 피해 접수는 총 3247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2%(1097건) 증가했다.

이 중 세탁기와 관련한 상담은 총 307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58.2% 증가했다. 상담 내용의 대부분은 ‘세탁기 부품 5년 만에 고장으로 부품 단종 수리 불가’, ‘전자제품 A/S 관련 소비자 불편사항’, ‘세탁기 불량으로 물이 새 신축건물 망가짐’ 등이었다.

소비자들은 무상기간 1년이 지나면 ‘무조건’ 유상수리를 받아야 하는 것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무상수리기간을 2년, 3년 등으로 점차 늘리는 방법으로 소비자의 일방적인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같은 피해 상담은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매년 같은 비율로 증가할 전망이다. 공정위는 기업의 신제품 생산 주기가 짧아지면서 소비자들의 피해 구제 호소 주기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지원 기자  jiwon512@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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