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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고마움·그리움 담은 국민애창가곡 ‘어머니 마음’왕성상의 그 노래 그 사연
왕성상 언론인/가수 | 승인 2021.05.17 13:00

[여성소비자신문]어머니 마음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 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엔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니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 하리요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북한출신 양주동 작시(作詩), 이흥렬 작곡…1930년대 때부터 많이 불려
서울 중동고 교문 앞에 노래비, 저작권 관련 송사에 휘말리기도 해 눈길

양주동(梁柱東 1903~1977년) 작시(作詩), 이흥렬(李興烈 1909~1981년) 작곡의 ‘어머니 마음’은 5월이면 자주 들을 수 있는 국민애창가곡이다. 5월 8일 어버이날 기념식에선 물론 부모님의 고희잔치, 팔순잔치 등에서 많이 불리는 효도관련 대표가곡으로 꼽힌다. 가사는 3절까지 있고 4분의 3박자다. 노래는 앞 대목에서 잔잔하고 평범하게 흐르다 마지막 8개 소절 중 앞쪽 4개 마디 멜로디가 강력하게 말하는 듯한 호소력을 줘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경성방송국(지금의 KBS), 전국에 노래 소개

노래가 만들어진 건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대다. 양주동이 자신을 지극정성 키워주시다 세상을 일찍 떠난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사무치는 그리움을 담아 지은 시가 노랫말이 됐다. 작시내용은 1941년 잡지 ‘삼천리’ 9월호에 실렸다.

그는 일제당국으로부터 가정가요(家庭歌謠)에 맞는 작사를 의뢰받아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에 나오는 부모님으로부터 입은 10가지 은혜를 게송(偈頌)으로 노래한 대목을 참조하고 그 뜻을 시에 담았다.

가정가요는 1939년 경성방송국(지금의 KBS)이 대중에게 노래를 지도하기 위해 펴낸 것이다. 제1집에 ‘어머니 마음’, ‘즐거운 우리 집’ 등 20여 곡이 실렸다. 양주동이 시를 쓸 때 참조했다는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은 1432년 조선 태종의 후궁인 명빈 김씨(明嬪 金氏)의 발원으로 간행된 불경(목판본)이다.

부모 은혜에 대한 보은을 가르치는 내용이다. 위경(僞經)이지만 효를 강조하는 중국, 우리나라에서 많이 간행됐다. 부모은혜 관련내용 중 회건취습은(廻乾就濕恩)은 어머니 자신은 진자리에, 자식은 마른자리에 눕힌다는 어머니의 은혜를 뜻하는 구절이다.

이는 ‘어머니 마음’ 노랫말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판본은 21장의 도상이 실려 있고 뒤쪽에 불설부모은중태골경이 있다. 흔치 않은 경우로 권수제(卷首題) 다음에 역자이름이 적혀있다. 보물 제1125호로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어머니 마음’ 작곡은 이흥렬이 경성방송국 근무 때 했다. 전파를 타고 전국에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애창했다. 악보는 1938년 조선방송협회가 발행한 ‘가정가요 제1집’에 나온다.

노래가 국민애창곡이 되면서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 중동고 교문 앞에 시비(詩碑) 성격의 노래비가 세워졌다. 중동고 64회 졸업생들이 2001년 10월 27일 모교에서 양주동 박사 시비제막식을 가진 것이다. 행사장엔 송석구 동국대 총장, 김무성 국회의원 등 이 학교 졸업생 100여명이 참가했다. 시인의 모교에 세워진 비엔 ‘어머니 마음’ 가사가 새겨져 있다. 양 박사는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초부리 산64-1 용인공원묘원에 잠들어있다.

노랫말 저작권자, 손해배상 청구

‘어머니 마음’은 한 때 저작권 문제로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다. 어버이날 많이 불리는 동요 ‘어머님 은혜’와 함께 소송을 당한 것이다. 언론보도내용을 따르면 두 노래 가사의 저작권을 갖고 있던 김모씨가 2016년 6월 재단법인 기독교서산제일감리교회와 학교법인 중동학원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다. 

기독교서산제일감리교회는 2014년 9월 교회 근처 공익카페 앞에 ‘어머님 은혜’ 작사가이자 이 교회 담임목사였던 윤모씨 업적을 기리기 위해 ‘어머님 은혜’ 가사가 적힌 노래비를 세웠다. 중동학원은 2001년 중동고에 ‘어머니의 마음’ 가사를 적은 노래비를 세웠다.

그러자 김씨는 “어문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각각 15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교회는 “백방으로 수소문해 연락이 된 유족으로부터 저작권이 다른 사람에게 양도된 사실이 없음을 확인했다”며 “유족에게 노래비제작에 대한 승낙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학교도 “원 저작자는 학교졸업생으로 영어교사로도 일한 적 있는데 졸업생들이 원 저작자를 기리기 위해 저작권을 상속한 원 저작자 자제로부터 사용동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원은 2017년 8월 교회에겐 400만원, 중동학원엔 300만원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교회 측이 원저작자 유족에게 문의해 저작권 등록을 한 바 없음에 대한 확인을 받고 사용승낙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승낙을 받았더라도 그런 사정만으로 이런 과실(사용승낙을 받지 않은 점)의 추정이 번복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 해당 노랫말이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소주제로 삼아 어머니의 마음을 나타낸 것으로서 가사가 갖는 어문저작물로서의 독립성과 개성이 강하다고 판단했다.중동학원은 해당 노래비가 학생들 정서와 효심을 키우기 위한 교육목적으로 세워진 것으로 저작권법에서 정한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한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법 제25조 2항은 ‘교육기관이 수업 또는 수업지원 목적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엔 공표된 저작물의 일부분을 복제·배포·공연·전시 또는 공중송신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노래비 설치와 위치 등을 보면 학생들 정서순화나 효심함양 등도 목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저작권법에서 정하는 저작재산권 제한사유로서의 학교교육목적 등 이용에 해당하려면 수업목적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공표된 저작물의 일부분을 복제 등 방식으로 쓸 수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은 이어 “이 사건처럼 학교담장 밖에 노래비를 설치한 것을 수업목적상 필요한 경우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2심도 1심 판단이 옳다고 봐 피고들 항소를 기각했다. 이 판결에 대해 교회와 학교 쪽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 2019년 4월 그 내용이 확정됐다.

작시자(作詩者), 작곡자 모두 북한 출신

이 노래의 작시자(作詩者), 작곡자는 모두 북한출신이다. 시를 쓴 양주동(호 : 무애 无涯)은 경기도 개성태생으로 황해도 장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시인이자 국문학자 겸 영문학자인 그는 고시가(古詩歌) 주석에 온힘을 쏟은 국학자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사람으론 처음 신라향가(鄕歌) 25수 모두를 해독, 이름을 날렸다. 중동학교(현재 중동고)와 일본 와세다대 영문과를 졸업, 동국대 교수로 몸담았다. 동아방송(DBS) 프로그램 ‘유쾌한 응접실’ 패널로도 유명세를 탔다. 그는 문학동인지 ‘금성’과 ‘문예공론’ 등을 발간했다. 1954년 대한민국학술원 종신회원으로 선임된 뒤 1962년 동국대 대학원장을 지내면서 대한민국학술원상,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어머니 마음’ 작곡자 이흥렬은 함경남도 원산태생으로 일본 동양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1931년 귀국해선 원산에 있는 모교(광명보통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33년 서울로 와 경성보육학교에서 작곡가 홍난파와 교편을 잡으며 동요작곡에 힘썼다.

서라벌예술대(1972년 6월 중앙대학교 예술대로 합쳐짐) 교수, 고려대 강사, 숙명여대 음대 교수·학장을 지냈다. 예술원 회원, 한국작곡가협회장, 한국방송가요심의위원장, 한국음악협회 고문 등으로 활동했다. ‘바위고개’, ‘봄이 오면’, ‘꽃동산’, ‘섬 집 아기’와 ‘진짜사나이’ 등 많은 가곡, 동요, 군가를 작곡한 현대음악의 선각자로 꼽힌다.

‘어버이 날’은 미국에서 시작

‘어머니 마음’ 노래가 많이 불리는 ‘어버이 날’는 언제, 어디서 비롯됐을까. 뿌리는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 사순절(四旬節)의 첫날부터 넷째 주 일요일에 어버이 영혼에 감사하기 위해 교회를 찾는 영국·그리스풍습이 있었다. 1907년 미국의 안나 자비스란 여성이 자신의 어머니를 추모키 위해 교회에서 흰 카네이션을 교인들에게 나눠준 데에서 시작됐다.

그런 가운데 1914년 미국 제28대 대통령 토머스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이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지정, 정식기념일이 됐다. 미국에선 해마다 5월 둘째 주 일요일 어머니가 살아있는 사람은 빨간 카네이션을, 돌아가신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모임을 갖는다. 집에선 자녀들이 어머니께 선물을 드린다.

우리나라는 1956년 국무회의를 거쳐 그해부터 매년 5월 8일을 ‘어머니 날’로 정했다. 어버이은혜에 감사하고 어르신을 받드는 마음을 키우기 위한 기념일이었다. 6·25전쟁 후 양육과 생업의 책임이 무거웠던 어머니들을 위로하고 기리는 날로 만들어졌다가 아버지의 고마움까지 포함하자는 여론에 따라 1973년부터는 ‘어버이 날’로 바뀌었다. 그해 3월 30일 만들어진 ‘각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6615호)을 근거로 삼은 것이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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