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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없는 사람의 길, 내로남불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1.02.24 12:49

[여성소비자신문]옳고 그름을 가리어 정의사회 구현을 사명으로 하고 사법부와 법관 독립을 지켜내야 할 대법원장이 국민의 지탄을 받고 정권의 눈치를 보는 행세를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대법원 근처에 ‘김명수 탄핵’ ‘거짓말 김명수 사퇴하라’ 등 규탄 문구가 적힌 근조화환들과 현수막이 늘어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과거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조직하여 인권 및 법원과 법관의 독립을 외치며 ‘사법적폐’의 여론몰이에 앞장서 왔다.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에서 권력자들의 위선적 행동이 유행처럼 번져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권력을 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위선적 행동이 어제 오늘에 비롯된 사회현상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과거 권력층의 위선을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단죄하며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 ‘평등, 공정, 정의로운 세상’을 열겠노라며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정권을 잡고 나서는 과거보다 더 위선적 행태를 보이는데 있다.

자신들의 거짓을 인정하고 사죄하며 책임지기는 커녕 오히려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데 있다.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구명하려는 검찰이나 정당 및 국민들을 수구 또는 정치 편향적 억지라며 자신들의 권력과 힘을 이용하여 압력을 가하고 잘못을 호도하려 한다. ‘내가 하면 옳고 남이 하면 그르다’라는 ‘아시타비(我是他非)의 사회적 병리현상이 이 나라를 병들게 하고 있다.

이 땅에는 왜 이리 권력형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가? 민주화운동가, 인권변호사, 사회운동가 등 그럴듯한 가면을 쓰고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인권 수호자로 포장된 이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이 정권의 최고위층으로 군림하던 이들이 범한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 또는 성 관련 부적절한 행위는 전 세계 자유민주국가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같이 듣기조차 거북스러운 권력자들의 성추문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지해온 진보진영 인사들은 그들의 잘못을 질타하기는 커녕 침묵하거나 오히려 이들을 비호하고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2차 피해를 가하고 있다.

사회적 공분을 자아낸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후원금 유용사건 또한 사회지도층의 위선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본 강점기에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이 당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와 고통을 알리고 명예회복을 위해 일한다는 고매한 사회운동가들의 위선이 드러났다. 살아남은 할머니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영달을 꾀하고 할머니들에게는 오히려 고통을 더해주어 왔다는 피해 할머니들의 의혹제기로 이들의 치부가 엿보였다.

정의연을 주도해온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기금모금과 운용의 혐의를 받았고 뒷바라지를 해온 실무자의 자살로 사건은 감추어질 상황에 처했다. 서울대 조국 교수는 학생들에게 정의사회를 열띤 강으를 해서 인기를 얻고 사회관계망(SNS)을 통해 사회정의 교육의 표상처럼 활동하면서 법무장관 후보로 등장한 인로 검찰 수사 과정에서 많은 국민들이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겉으로는 선량한 채 하지만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고 타인에게 보이는 겉모습은 그럴듯하게 꾸미는 속임수이며 사회적 가면이다.

사회적 가면의 행동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나타나는 속성이라고 한다. 즉 인간은 누구나 위선적인 면을 지니고 있어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위선까지도 완전히 극복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불편하게 하며 자신만을 위한 의도적 행동이라면 이는 사회적 해악이 될 수 있다. 위선자들이 출세하고 득세하면 정직하고 선량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도전의 의지와 기회를 박탈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병리현상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의미의 ‘내로남불’이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고질병이 날로 심각해지자 지난해 교수신문이 2020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내로남불을 뜻하는 아시타비를 선정했다.

40여년전 필자가 미국 유학시절 시카고에 있는 한국인 교회에 나간 적이 있었다. 어느 날 50대 중반의 담임목사께서 유대인 지도자 모세에 관한 설교를 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자 이를 비방한 그의 누이 미리암에게 하나님께서 나병으로 벌했다는 것이다(민수기 12장). 그리고 그 목사는 설교 후 자신을 책망한 장로를 파문시켰다. 그러자 교회 청년들이 들고 일어나 유부녀를 간음한 목사의 거짓과 위선을 폭로하며 목사를 쫓아내었고 결국 그 교회는 문을 닫았다.

성경은 기독교의 경전이지만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기도 하다. 그 내용은 위선과의 투쟁의 기록이며 위선자일지라도 잘못을 회개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나아오면 복을 주겠다는 약속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쓰인 성경 구절을 어려서부터 암송하며 자라는 유대인들이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유대인의 학술적인 탁월함은 물론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힘은 위선의 극복에서 오는 유대인들 간의 신뢰와 신용에 있다. 내로남불의 편법으로 얻어지는 일시적 성공은 훗날 불행과 패망으로 끝을 맺는 복 없는 사람의 길일뿐이다.

서양 격언에서 들려주는 교훈을 되새기자. “하루를 행복하고 싶거든 이발관에 가고, 한 달을 행복하고 싶거든 새 말을 사고, 일 년을 행복하고 싶거든 새집을 짓고, 일생을 행복해지고 싶거든 정직한 인간이 되라.” 도덕과 윤리가 깨어지고 거짓이 미화되는 비윤리적 사회는 무질서와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되는 후안무치한 동물세계로 전락할 것이다. 복 없는 사람들의 길에서 돌아서자.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kucwka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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