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 2021.10.16 토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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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희망과 용기, 힘을 주는 가곡 ‘희망의 나라로’[왕성상의 그 노래 그 사연] 대구 출신 현제명, 1931년 “힘든 삶․고통 이겨내자”며 작사·작곡, 2003년 2월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식 때 불려…‘친일 노래’ 비판도
왕성상 언론인/가수 | 승인 2021.01.11 16:46

[여성소비자신문]희망의 나라로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
산천경개 좋고 바람 시원한 곳 희망의 나라로
돛을 달아라 부는 바람 맞아 물결 넘어 앞에 나가자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 찬 곳 희망의 나라로

밤은 지나가고 환한 새벽 온다 종을 크게 올려라
멀리 보이나니 푸른 들이로다 희망의 나라로
돛을 달아라 부는 바람 맞아 물결 넘어 앞에 나가자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 찬 곳 희망의 나라로

2021년 새해가 시작됐다.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지구촌이 큰 몸살을 앓았으나 백신개발로 올해는 희망과 변화가 예상된다. 이럴 때 부르거나 들으면 좋은 노래가 있다. 우리 가곡 ‘희망의 나라로’다. 제목처럼 뭔가 용기와 힘을 줄 것 같은 곡이다.    

‘희망의 나라로’는 음악인 현제명(玄濟明)이 작사․작곡했다. 테너 엄정행(전 경희대 교수), 이인범 등 성악가들과 합창단에서 자주 불린다. 4분의 4박자 라장조로 쾌활한 흐름이다. 원래 빠르기는 Allegretto(‘조금 빠르게’)지만 힘 있고 밝은 느낌이 나도록 씩씩하고 힘차게 부르면 노래분위기가 산다. 특히 한해가 시작될 때 부르면 희망차다.

노래가 만들어진 건 1931년(발표 시기는 1932년). 그해 발간된 ‘현제명 작곡집’ 제2집에 담긴 뒤 오늘날까지 애창되는 현제명의 대표작이다. 현제명은 해방 전후 우리나라 음악계 대부이자 큰 별이었다. 1926년 미국으로 음악유학을 떠난 선각자였다. 문학과 음악적 재능을 갖춘 작사가․작곡가․성악가다. ‘희망의 나라로’에서 보듯 그의 음악에선 비관보다는 낙관, 어둠보다는 밝음이 다가온다.

구한말에 히트한 가수 채규엽의 노래 ‘희망가’와 함께 ‘희망의 나라로’ 인기는 대단했다. 우리 민족의 힘겨운 삶과 고통을 이겨내게 한 노래였다. 2003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식 때도 불렸다.

현제명의 고향 대구에선 노래제목을 행사명으로 한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음악인들이 대구시민과 소통하기 위해 해마다 펼쳐지는 지역음악계 행사 때 ‘희망의 나라로’ 관련프로그램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 노래는 경남 진주출신 대중가수 남인수(1921~1962년)의 생전 애창곡이기도 했다. 그는 노래를 부르면서 강약의 호흡을 자유자재로 조정하는 등 뛰어난 발성을 하는 가수로 무대에서 앵콜을 받으면 맨 먼저 ‘희망의 나라로’를 열창했다. 남인수는 살아있을 때 입버릇처럼 “내가 성악공부를 했더라면…” 하는 말을 자주 했다.

“대동아공영 나가자 뜻 담겼다” 지적도

이 노래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다.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점을 들어 대동아공영(大東亞共榮)으로 나가자는 뜻을 담고 있다는 지적이다. 친일노래란 얘기다. 대통령 취임식이나 신년하례식 등에서 불리고 있으나 잘못됐다는 견해가 많다. 가사에 나오는 배를 저어 찾아가는 희망의 나라는 ‘광복된 조선’이 아니라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을 염원하는 뜻이 담겼다는 것이다.

2010년 9월 17일 저녁 서울시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친일&항일 시민음악회’ 때도 이런 말들이 오갔다. 1931년 일본의 괴뢰정부인 만주국 요청으로 현제명이 작곡했다는 소리가 나왔다.

그날 행사는 한국광복군 창설 70주년을 맞아 광복군의 독립정신을 잇고 일제잔재가 남아있는 우리 음악의 현실을 고발하는 자리였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사단법인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등 22개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하고 평화재향군인회가 주관한 음악회로 ‘희망의 나라로’가 ‘선구자’와 일본제국주의를 찬양한 대표적 친일노래란 사실이 소개됐다. 현제명은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들어있다.

물론 반론도 있다. 노랫말에 자유, 평등, 평화 등 민권인식에 대한 의지가 들어있다는 점을 든다. 이 노래를 작사·작곡했던 1931년 현제명이 친일파였는지도 명확치 않다는 것이다. “현제명이 이광수, 최남선, 서정주처럼 훗날 친일파가 됐다고 비판할 수는 있을지언정 곡 자체가 친일적 상징이라 하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두 시각이 있는 가운데 노래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색현장이 있었다. 일본에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 행사가 열린 2014년 2월 22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희망의 나라로’가 울려 퍼져 관심을 모았다.

나라독도살리기국민운동본부 주최 ‘일본 다케시마의 날 규탄대회’ 참석학생들이 노래를 부르며 ‘독도는 우리 땅’을 외쳤다. 2019년 1월 3일 오후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경상남도 신년인사회’ 때도 불렸다. ‘가야 100인 패밀리합창단’(지휘 유영성 창원대 교수)이 노래를 부르는 등 나라안팎의 의미 있는 행사장에서 ‘희망의 나라로’가 빠지지 않고 있다.

이 노래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가곡 10위권’에 들어간다. 2015년 예술의전당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두 차례 온·오프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가장 좋아하는 가곡’ 40곡을 뽑았다. 집계결과 ‘그리운 금강산’(1위), ‘가고파’(2위), ‘보리밭’(3위), ‘봄처녀’, ‘봉숭아’, ‘비목’, ‘임이 오시는지’, ‘선구자’에 이어 9위를 했다.

홍난파와 우리나라 가곡 양대 산맥

‘희망의 나라로’ 노래를 만든 현제명은 190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호는 현석(玄石). 홍난파(1896~1941년)와 함께 초창기 우리나라 가곡의 양대산맥으로 일컬어진다. 두 사람은 한민족정서를 담은 아름다운 가곡들을 많이 작곡, 우리 음악발전에 주춧돌을 놨다는 평가다. 

교육자이자 테너가수이기도 한 현제명은 기독교계통인 계성학교를 거쳐 평양 숭실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성악과 피아노연주에 관심을 갖고 음악공부를 열심히 했다. 1923년 졸업, 전주신흥학교에서 음악교사를 지낸 뒤 1925년 미국 시카고 무디성경학교(Moody Bible School)에 들어가 음악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건 음악학교(Gunn Music School)로 옮겨 1년간 공부한 뒤 연희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고려교향악단을 창설했고 경성음악학교도 세웠다.

서울대 음대 초대학장, 한국음악가협회 초대이사장, 예술원 종신회원 등을 지냈다. 주요 작품은 가극 ‘춘향전’, ‘왕자호동’, 가곡 ‘산들바람’, ‘고향 생각’, ‘나물 캐는 처녀’ 등이 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 창작오페라 ‘춘향전’을 작곡, 1950년 5월 무대에 올려 크게 히트했다. 명랑·쾌활하고 활동적이었던 그는 1960년 58세로 세상을 떠났다.

현제명 일대기 ‘희망의 나라로’ 출간

한편 현제명의 일대기를 담은 책 ‘희망의 나라로’(부제 : ‘험한 바다 물결 건너 노를 저은 현제명’)가 출간됐다. 김중순 전 계명대 한국문화정보학과 교수가 썼다. 이 책은 현제명의 어두웠던 부분까지도 숨기지 않으면서 그의 복잡했던 속내를 최대한 이해하도록 했다. 일기를 보는 듯 되살려낸 글들은 ‘인간 현제명’을 그대로 보여줘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현제명은 국악이 미천한 옛 음악으로 여겨질 때 신념을 갖고 국악의 가치 재발견에도 앞장섰다.

 ‘희망의 나라로’ 노래제목과 비슷한 일본영화 ‘희망의 나라(希望の国 키보노 쿠니 / The Land of Hope)’도 눈길을 끈다. 소노 시온 감독이 동일본대지진 충격을 보고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다. 갑작스러운 대지진과 쓰나미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이야기다. 대재앙으로 모든 게 사라진 뒤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삶을 개척하는 내용이다. 원자력발전소, 정부, 자신에 대해 한 번쯤 돌아보게 한다. 나츠야기 이사오, 오오타니 나오코, 무라카미 준, 카구라자카 메구미 등이 출연했다. 2012년 10월 20일 개봉된 뒤 우리나라에선 2012년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때 상영됐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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