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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죽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지 모르겠어요"
김혜숙 백석대학교 교수/가족상담사 | 승인 2021.01.11 16:13

[여성소비자신문] 평범해 보이는 40대 남성 P는 한 집안의 가장이며 남편이고 두 딸의 아버지였다. 직장인으로 일상생활을 하다가 갈등의 순간에는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고통을 호소했다.

P는 자신의 책상 서랍에 항상 과다한 수면제를 보관해 두고 있었다. P는 심리검사에서는 양극성 성격장애를 보이기는 했지만 심각하진 않았다. 나무 모양의 가족모형들을 세우면서 성장한 가족력을 살펴보니 어머니는 아주 지배적이고 통제가 강하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강한 체벌로 자녀들을 다루었다.

P는 신체적 정서적 학대 속에서 자신은 나쁜 사람이며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믿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알게 되면 모두 실망하고 자신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학대와 강한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가출하는 것으로 한 두 달 있다가 다시 집에 들어와 살곤 했다. 유일하게 아버지는 자기를 이해해 주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도 부인의 강한 성격에 참고 살았지만 결국에는 아버지를 부정하고 인격을 무시하는 비난에 굴욕감과 상처를 받고 자살을 하고 말았다.

P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에너지가 나오고 아버지는 그래도 엄마의 불의에 대항하고 자기 의사를 표현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자살은 자녀들을 학대하고 폭군 같은 엄마에게 제대로 한 방 복수를 날린 것이라며 죽은 아버지에 대해 강하게 동일시하며 남성은 여성의 지배와 억압을 당하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를 지키는 강한 신념으로 자리를 잡았다.

P에게 자살은 누구를 죽이고 싶은 것인지 혹시 자기 내면에 있는 어머니를 죽이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어머니를 복수하고 싶은 것인지 물었다. 자신의 자살이 아내와 두 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장례식에 오는 사람들은 죽은 P에 대해 어떤 말들을 할 것인지 직면해보고 자살이 주는 어떤 이점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탐색하기도 했다.

결정적인 것은 아버지에 대한 동일시가 강했다. P가 엄마의 학대에서 굴복해버린 힘없고 나약한 아버지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아버지의 자살을 이상화하고 용기 있는 행동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청소년기부터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얼마나 힘들게 성장해야 했는지 내 영혼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전하고 죽고 싶었다고 고백하며 아버지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해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자살이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다른 남편들은 아내의 학대나 폭력에 어떻게 대처하며 자살 같은 파괴적인 방법보다는 좀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안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는 아버지에 대한 이상화와 동일시가 낮아지고 다른 남성상의 긍정적인 특성들도 서서히 받아들이면서 자살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P의 표상에 있는 아버지에 대한 전부 좋거나 나쁘거나 지각된 대상을 의식화하므로 미움 속에는 사랑도 있고 사랑의 대상에는 증오나 분노도 있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하게 되었다. 자기를 학대했던 사람도 결국은 자기처럼 힘들고 상처 받은 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긍휼하게 보고 수용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김혜숙 백석대학교 교수/가족상담사  kimhyeso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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