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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소띠의 해에 생각해 보는 소의 교훈들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0.12.18 10:12

[여성소비자신문]길 잃은 쥐가 어두운 미로를 헤매는 것 같은 경자년 쥐띠의 해도 묵묵히 다가오는 소띠의 해 신축년에 자리 물림을 하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과 전세값, 늘어나는 폐업과 실업자에 세금폭탄, 국민들의 아우성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터져 나오는 권력층의 비리와 권력투쟁의 아수라장 속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휩쓸린 2020년이었다.

사람 만나는 게 두렵고 꽉 끼인 KF94 위생마스크 때문에 숨쉬기 조차 불편하다. 참으로 지치고 힘든 삶에 혼란과 두려움은 날로 더하고 있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감염확진자가 하루에도 1000여명 이상 치솟자 저녁 9시 이후에는 통행금지령이 내린 것처럼 거리는 을시년스럽다.

교회도 문을 닫고 송년모임도 없는 연말이라 가게에서 다윗의 별이 달린 소나무 그림의 성탄카드를 사들고 나왔다. 그간 누려왔던 일상이 얼마나 큰 즐거움이며 마음껏 숨 쉬는 것이 하나님의 큰 은총임을 적어 넣었다.

우체국 직원이 건네 준 연하우표에 복주머니를 등에 업은 흰 소의 그림이 2021년이 신축년(辛丑年)임을 말해주고 있다. 야수파 화풍으로 그림을 그린 이중섭 화백의 작품 ‘흰 소’가 떠올랐다. 그는 소를 빌어 일본 침략과 해방 후 혼돈시대의 아픔 그리고 자신 삶의 고뇌를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흰 소는 신성한 기운을 품고 있어서 희우(犧牛)라고 한다. 그래서 신에게 제사할 때 제물로 바쳐진다.

나에게는 이중섭과 같은 예술적 재능이나 감성은 없으나 소와 눈과 마주치는 순간 소의 희로애락 감정이 느껴지는 감정이입(感情移入)이 일어날 만큼 친숙하다. 열 살도 채 못된 나이부터 꼴을 베어 소를 먹이며 소를 괴롭히는 쇠파리와 해충을 막아주고 외로운 들판에 말벗이 되었다.

그 후 공부하느라 서울에서 살아야 했기에 영화 ‘워낭소리’의 주인공 최 노인과 같은 소와의 아름다운 동행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대학에서 축산학 전공 덕분에 소로부터 꽤 많은 배움도 얻게 되었다.

“소는 말이 없어도 열 두 가지 덕이 있다”라는 속담이 있다. 소는 성질이 급하지 않아 웬만한 일에는 쉽게 놀라거나 흔들리지 않는 유유자적한 모습을 지닌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문인들이나 화가들의 글과 그림에 소가 소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순해 빠진 소이지만 자신에게 적의를 품거나 해를 끼친다고 느끼면 뿔과 힘으로 상대방을 무섭게 공격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남부지역에 인기 있는 소싸움이나 스페인 사람들이 열광하는 투우(bull fighting)와 같은 경기가 벌어지는 것이다. 소는 지능지수 면에서는 원숭이나 개와 같은 반려동물에 미치지는 못 하지만 주인의 뜻을 알아차리고 행동하며 상황변화에 대처하는 능력과 목표를 향한 끈질김은 참으로 감탄할 만하다.

영화 ‘워낭소리’에서 보듯이 자식들의 성화에 못 이겨 주인 최 노인이 자신을 시장에 내다 팔 것을 눈치 챈 ‘누렁이’는 서러움에 주인이 마지막으로 맛있게 끓여준 쇠죽을 먹지 않는다.

소의 유유자적함은 카메라 앞이나 구경꾼들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주인의 말을 따르는 행동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역사적 기록과 전설에는 소의 특성과 지혜를 교훈 삼아 덕을 쌓고 삶의 지혜로 삼은 인물들의 일화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조선시대의 세종 때 황희(1363~1452)가 정승 벼슬을 얻기 전 길을 가다가 나이 든 농부가 두 마리의 소를 부려 논을 갈고 있는 것을 보고 큰소리로 물었다. “누렁이소와 검정 소 두 마리 가운데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하나요?” 그러자 농부는 일손을 놓고 황희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누렁소가 더 잘하오”라고 대답했다.

귓속말에 의아해 하는 황희에게 농부는 덧붙였다. “두 마리 다 힘들게 일하는데 어느 한쪽이 못한다고 하면 그 말에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소.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오.” 노인의 대답에 크게 깨달은 황희는 이후로는 남의 단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여름 남부지방에 몰아 쳐온 폭풍우와 물난리 속에서 살아남은 소들을 보며 이 짐승들이 역경과 고난의 위기를 대처하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올해 8월 우리나라 남부지방에 기록적인 폭우로 섬진강, 낙동강에 홍수가 발생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로 인하여 섬진강 홍수로 떠내려가던 소 떼가 산속 암자에서 구조되었고 어떤 소들은 급류에 휩쓸리자 사흘 만에 한 마을의 주택 지붕에 올라 구조되기도 했다. 낙동강 홍수에 4일간 90km 가량 떠내려가던 소들이 낙동강 하류 둔치에서 발견되어 주인과의 눈물 어린 상봉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 같은 보도에 사람들은 소가 꽤나 헤엄에 능숙한 동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소는 수영에 매우 약한 동물이다. 이처럼 큰 홍수에 살아남는 것은 우생마사(牛生馬死)의 교훈에서 보는 소의 지혜 때문이다.

넓은 저수지에 소와 말을 동시에 집어넣으면 두 짐승 모두 다 헤엄쳐 나온다. 그러나 헤엄쳐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말 보다 소가 두 배나 더 소요될 만큼 소는 헤엄질에 서투르다.

그러나 홍수로 갑자기 물이 불어난 급류 속에 소와 말이 빠지면 소는 살아 나오는데 말은 익사하고 만다. 헤엄에 능숙한 말은 빠른 물살에 떠 밀려가지 않으려 발버둥치다 결국 지쳐죽고 만다.

그러나 수영에 서투른 소는 굳이 급류를 거스리기보다는 그냥 거대한 물살에 몸을 맡긴 채 떠내려가다 강둑이나 건물을 만나면 발을 딛고 나와 목숨을 건진다.

답답함과 두려움으로 맞이하는 소띠의 해에 우상마사의 교훈을 되새김해본다. 역경과 환란을 한탄하며 불평불만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하기 보다는 긍정적인 사고로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되 끈질김으로 위기 속에 나타날 기회에 소망을 두는 지혜를 발휘해보자.

환경변화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을 일컬어 소처럼 일을 잘한다고 칭찬한다. 소의 덕목으로 자주 인용되는 사자성어로 우보만리(牛步萬里)가 있다.

소의 걸음이 느리기는 하지만 한 걸음씩 쉬지 않고 걸어서 만리를 가는 것처럼 뜻을 바로잡고 인내하며 끝까지 나아가면 뜻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M. Gandhi) 역시 “오, 인간이여, 생이 그대를 저버려도 멈추지 마라”라는 말로 우보만리의 지혜를 인도 국민에게 교훈하지 않았던가.

지속되는 정치 사회적 분열과 갈등, 팬데믹까지 겹쳐있는 이 땅에 소띠의 해를 맞이하여 소의 덕목이 우리 모두의 마음에 되새기는 교훈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반대파를 향하여 갖은 험담과 횡포를 일삼는 권력자들이 황희 정승의 두 마리 소에서 얻는 겸손과 신중함의 교훈을 다시 보았으면 좋겠다.

희망의 빛이 사라진 것 같은 2021년 신축년이지만 우리 국민 모두 순박하고 성실, 인내, 근면함의 덕을 지닌 소로부터 ‘우생마사’와 ‘우보만리’의 교훈을 되새기고 삶의 지혜로 삼아 모두 승리하는 신축년 한해가 되기를 축복한다. 밤이 어두울수록 별이 더 빛나고 거센 파도 후에는 밝은 태양의 기다림이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는 희망의 신축년 새해를 맞이하자.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kucwka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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