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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정국에 음미해보는 사주 그리고 꼰대에 관한 좀 짦은 단상[하도겸 칼럼 26]
하도겸 나마스떼코리아 대표 | 승인 2020.11.24 18:00
[여성소비자신문]훌륭한 역술인 후배가 고맙다며 육효의 운수를 하나 카톡으로 알려준다. 배를 대야 할 나루터가 없다나?
 
사주 운명은 모두 지표일 따름이다. 윤판 즉 나침반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운명이라는 이 윤판이라는게 늘 북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방향을 돌릴 수도 있다. 자석을 가지고 있거나 자기장이 형성된 곳으로 가거나 그도 아니면 아예 달리 또는 거꾸로 해석하거나 등등이다. 다름이라고 하면 틀림이나 나쁨이 아닌 그냥 다름으로 그것을 넘은 넓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런 안목이 있어야 좀 다르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의 사주는 늘 수행하고 NGO 등 봉사활동을 해야 되는 사주인 것을 많은 고난 뒤에서야 비로소 알았다. 대한민국에 나같은 사람이 1∼2% 정도는 있을 것 같다. 어짜피 남에게 뺏길 돈이나 물건이란 생각에 ‘그냥 주고 싶은 사람에게 먼저 주면 어떨까?’라는 가끔은 참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마음가짐을 늘 똑바로 가지며 유지해야겠다며 다짐하는 하루하루. 이래야 밖에서 변고가 생기면 그나마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셔서 대비가 조금이라도 되기 때문이라고 하면 좀 쉬운 표현일까?
 
오랜만에 항구에 닿았는데 배를 대어야 할 나루터가 없다고 역술인이 말하면 다들 엄청 놀라겠지? 근데 나루터가 어디 따로 있는가? 삶이 다 나루터라고 생각하고 어디든 배를 잘 대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나루터가 없어도 배를 댈려면 평소에 선행을 해서 덕을 닦고 복을 쌓아야만 할 것 같다. 그래야 언덕에 배를 대었을 때 덜 실패하고 적어도 좌초는 당하지 않겠지라는 희망을 가져도 별로 뻔뻔하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시절에 ‘배는 굳이 왜 띄워? 뭐하러?’라는 생각도 든다. 그냥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일상의 일을 잘 하는 것이 수행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 한가하면 혼자서도 잘 저을 수 있는 뗏목이나 하나 띄어서 조금씩 흐름 따라 나아가면서 양단에 안 닿게만 조심스럽게 나아가면 되는 거 아닌가?
 
어짜피 정해진 복이 만약 있다면 언젠가 치환되어 올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야 말로 아니면 말구! 결국 못 받아도 아쉬워 안하면 되는 것 아닐까? 만약 마음이 쓰리고 아프면 그것도 상(相)이 생긴 것이니, 거꾸로 상(賞) 받은 것으로 치면 그만 아닐까?
 
그렇게 받은 것이랑 별 진배없다고 생각하며 또 하나의 커다란 교훈으로 삼지 뭐. 마음공부 다른 게 있나? 괜히 안받을 거 받으면 그게 ‘럭키(행운)’가 아니고 그 전화위복(轉禍爲福). 아니 전복위화이 되더라는 말을 참으로 많이도 들었다. 그러니 굳이 지금 못받았다고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어진다.
 
공짜가 없듯이 늘 국민연금처럼 나중에 좀 연기해서 받는 게 좋을 때도 있는 듯하다. 좀 못 받거나 덜 받고 죽으면 또 어때? 뭐가 문제인가? 여하튼 잘 살아왔잖은가? 거꾸로 마지막으로 국가에 공헌하고 남들에게 보탬이 되면 좋은거지. 뭐. 자의든 타의든 결과가 좋고 굳이 생색낼 수도 없으니 그만큼 좋은 선행은 또 없지 않은가? 어짜피 죽는 건데 그냥 기분 좋게 가자. 너무 더 받지 못해 언짢아하거나 아까워하지 말고.
 
어짜피 연금은 받는 건데, 좀 늦춰서 받으면 이자가 높아지는 건지 몰라도 더 받을 수 있으니 더 좋지 않나? 그냥 그런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내게 다가오는 흐름을 마주하며 연금처럼 받는 시간을 늘리기도 줄이기도 하면 되지. 그렇게 그런 것도 즐기면서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도 좋지 않은가? 혹 이 생에서 덜 받으면 다음 생에 더 받는다는 희망과 믿음으로 말이다.
 
일시적으로 사주 등의 운명을 믿고 까불다 엮이고 휘말리면 그런 사람한테 말년이 어디 따로 있나? 바로 당장 어려워지거나 힘들어져서 내일조차도 기약할 수 없을 텐데. 그래서 그냥 배 띄우려 하지 말고 잠자코 받은 것이나 잘 소화하고 있으면 되지. 줘도 못먹으면 더 아깝잖아. 그리고 그래도 최소한의 꼴값은 해야 하니까.
 
그렇게 하세월 있다 보면, 주변에서 ‘왜 아직도 안띄워? 이제 배 띄워도 되지 않아?’라는 말이 들리게 되는 경우도 있더라구. 이도 아니면 말구. 만약 듣게 되면 그때 띄어도 늦지 않거든. 그때는 ‘신의 목소리’라고 여기고 ‘Just do it!’하면 돼. 그리고 그래도 또 안하면 어때? 어짜피 다음생이 점점 더 소중해지고 행복해질 텐데. 참고 참으며 그렇게 안분지족하는 삶이 바로 우리들 인생이라는 거대한 게임을 수행하는 수행자의 삶이지. 인생을 음미하고 늘리고 줄이는 그런 묘미를 즐길 수 있는 삶 말이다.
 
늘 그렇지만 글쓰기도 인품 특히 덕을 닦는 일 같다. 다짜고짜 뭘 써서 올리지 말고 늘 배려하며 듣는 사람 입장에서 잘 이해하도록 자초지종을 잘 설명해야 한다. 보통 여기서 인간의 품성이 드러난다. 그렇게 알기 쉽게 글을 쓰는 모습이 보여야 한다. 늘 그게 어렵다. 그래서 그걸 잘하는 친구를 보면 부럽기만 하다. 단순히 글쓰기 잘해서가 아니라 전생부터 그런 업을 쌓은 결과이기 때문에 아니면 그렇게 보고 싶기 때문에 그 덕과 복이 부러운 것이리라.
 
여하튼 전 좀 더 부드럽게 지적이 아닌 조언을 계속할 것이다. 그게 우리 운명이고 이 땅에 태어난 의의라고 생각하니까. 나만이 아닌 늘 남과 함께 하는 인생 말이다. 아예 만나지 않았으면 몰라도, 인연이 있어서 만나면 정성을 다해서 알려주는 거 그게 맞는거 아니가? 그런데 꼰대라는 말도 안되는 욕을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아이들 교육할 때 매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말 자신의 화풀이나 폭력 근성이 아니라 사랑으로 해야 한다. 그게 없이 잘난척하는 것은 꼰대가 맞고 사랑으로 한다면 그건 보살행이 된다.
 
나이들수록 스스로는 잘못 보지만 점점 남 특히 젊은 사람들의 잘못은 더 잘 보이고도 한다. 알려 드려도 상대가 기분 나뻐서 못 고치면 그건 그분 몫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조심스럽게 알려드릴 따름이다. 아는 후배나 젊은이일 경우는 그냥 막 가르쳐주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후배한테 고맙다면서 몇 가지 지적질을 했다. 배은망덕한건가? 여하튼 미안하게.
 
오늘도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살얼음판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지 않고 늘 오늘 마쳐도 좋은 남과 함께 하는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하도겸 나마스떼코리아 대표  dogyeom.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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