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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모리부터 영성 훈련까지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0.11.12 17:33

[여성소비자신문]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立冬)에 접어들어 은행나무 아래 노란 잎이 수북이 쌓일 때면 나는 그 해 세상을 떠난 친지와 유명인사들의 스크랩을 정리하는 버릇이 있다.

울고 웃는 사이 2020년이 우리에게 허락한 한해도 거의 다 소진했다. 저세상으로 떠난 분들의 삶의 궤적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픈 것이다. 우리는 자나 깨나 사는 것만 생각한다. 먹고 사는데 부족함이 없는데도 남보다 더 잘살고 싶어 안달이다. 그러나 실상은 언제 올 줄 모르는 죽음의 부름 때문에 더욱 삶의 집착이 강해지는 것이다.

삶이란 태어나서 죽음으로 향하는 길을 걷는 것이기에 죽음은 삶 속에 들어있는 실존임에도 두렵고 불안하다. 공자도 “아직 삶도 모르는데 하물며 죽음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식사모임 마저 미루는 사이에 갑자기 두 명의 내 친구도 저 세상으로 떠났다. 허망함에 두 친구와 같이 찍었던 옛 사진들을 들쳐보자니 톨스토이가 남긴 말이 생각났다. “이 세상에 죽음 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는 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

이 친구들도 그러했던 것 같다. 6·25전쟁 전후로 태어나 온갖 간난을 이기고 나름 성공을 해서 이제는 제법 살만하다며 친구들 식사대접을 서로 하겠다고 나서곤 했다.

죽음의 준비도 없이 하늘나라의 부름을 받은 이들이 어디 이 친구들뿐이랴. 장례식장 고인 명단에 적힌 갑남을녀(甲男乙女)들이나 세인의 부러움과 사랑을 받아온 저명인사들 가운데 죽음의 목전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다음 세계에서 다시 보자며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된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돈 많은 부자도 죽음을 거부할 수는 없다. 올해 1월에 롯데 신격호 회장이, 10월에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저 세상을 향해 떠났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어려운 시절 무일푼으로 일본에 밀항하여 사업가로 대성한 신격호 회장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롯데그룹을 연매출 90조원의 세계적인의 대기업으로 키운 후 99세로 타계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한국기업을 세계 1위로 이끌어 올린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 역시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며 혁신적 경영으로 반도체와 전자제품에서 세계의 삼성을 키워낸 큰 인물이며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이지만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져 투병 중 돌아가셨다.

6·25 영웅인 백선엽 장군도 100세의 삶을 마치고 우리 곁을 떠났다. 대한민국을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구해낸 지혜와 용맹의 전쟁 영웅이지만 하늘의 부름에는 거역할 수 없었나보다.

얼마 전에는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 좋아했던 영국의 영화배우 숀 코너리(Sean Connery)가 90세로 별세했다. 아홉 살에 우유배달을 해야 했고 13세에 다니던 학교를 그만 두어야 했지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첩보영화 ‘007 시리즈’의 주역을 맡을 만큼 서구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이었다.

안타까운 죽음도 있다. 한 때 인권변호사, 사회운동가로 존경받던 정치인이 자기 여비서에게 가한 성폭력 사건에 휘말려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부끄러운 죽음을 택했다.

10여년 전의 노무현 전 대통령, 2년 전 노회찬 국회의원에 이은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 하루 자살자 42명이라는 세계 최고의 자살율, 이 모두가 죽음이 삶의 끝이라는 그릇된 확신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언젠가 뉴욕타임스 조차도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율을 언급하면서 “한국은 전 국민이 신경쇠약에 걸리기 직전에 있다”라는 말로 우리의 높은 자살율이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 부족에 있음을 지적한 적이 있다.

참으로 공감을 주는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삶 속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회피하려 한다. 마을 중앙에 공동묘지가 있는 서양에서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라틴어가 대화 중에 자주 등장한다. “당신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경고이다.

옛날 로마시대에 해외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개선장군의 시가행진 뒤켠에서 노예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한다. 즉, 개선장군이라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너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니 겸손하게 살라. 나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이 죽음은 언제라도 올 수 있는 짧은 인생이라는 현실을 깊이 인정하자.

그러면 자연히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죽음 후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게 될 것이다. 이 두 질문 가운데 두 번째 사후세계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현재의 삶이 더욱 분명해지고 삶의 보람과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의 명제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데 답이 있다. ‘사후에 삶이 존재한다’ 아니면 ‘죽은 다음에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므로 사후세계는 없다.’

미국 예일대학의 케이건(S. Kagan) 교수는 그의 저서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전자를 인간이 육체와 영혼의 조합이라는 이원론으로, 후자를 ‘인간은 곧 육체’라는 물리주의(物理主義)로 설명하고 있다.

자유 의지를 지닌 인간은 이들 중 하나를 받아들인다. 과학의 발달과 물질주의에 사로잡힌 현대인은 비물질적인 영혼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기에 대다수가 물리주의 즉, 무신론을 택한다.

그 결과 영의 존재를 무시하고 갈수록 영성을 잃어가고 있다. 영성(spirituality)은 인간의 고차원적 의식 수준으로 자연과 우주 등 자연적 존재를 뛰어 넘는 초월적인 실존관계를 말한다.

기독교에서는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창조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세우는 것을 영성훈련이라 한다. 20세기에 들어 죽음의 현장에서 일어난 영적현상인 임사체험(근사체험 near-death experience)에 관련된 논문들이 세계적인 저명 의과학 학술지에 게재되는 등 사후세계에 대한 활발한 연구로 영생이 과학의 새로운 영역이 되고 있다.

서울대 의대 정현채 교수는 의사로서의 자신의 경험과 수많은 논문들을 수집 조사하여 “죽음은 사방이 꽉 막혀있는 벽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메멘토 모리’의 확실한 인식과 영혼의 실존을 인정하여 영성훈련에 힘쓰자. ‘우리의 존재가 죽음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죽음의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 현재의 삶이 더욱 즐겁고 보람있고 아름다워지리라.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kucwka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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