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나훈아 ‘고향역’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이쁜이 꽃분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 안고

눈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코스모스 반겨주는 정든 고향역

다정히 손잡고 고개 마루

넘어서 갈 때 흰머리 날리면서

달려온 어머님을 얼싸안고 바라보았네

멀어진 나의 고향역

가수 나훈아(본명 최홍기, 1947년~)의 빅히트곡 ‘고향역’(4분의 4박자, 고고리듬)은 언제 들어도 정겹고 마음이 푸근해진다.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시골출신들에겐 추억의 가요다. 추석 등 명절 때 방송사 음악프로그램 단골곡으로 신나고 흥겨운 분위기를 살려준다. 이 노래는 1960~70년대 산업화와 고속성장기에 출향인들의 대표적 망향가로 꼽힌다. 노래를 만든 사람은 음악인 임종수(林鍾壽․78) 선생. 노랫말을 썼고 곡까지 붙였다.

나훈아의 ‘차창에 어린 모습’이 원곡

‘고향역’은 1971년 신인작곡가 임종수 작사․작곡, 나훈아 노래의 ‘차창에 어린 모습’이 원곡이다. 기차를 타고 고향을 떠나는 모습이 떠오른다.

“(1절) 떠돌다 머무는 낯선 타향에 / 단 한 번 정을 준 그 사람을 홀로 두고서 / 혼자만 몸을 실은 열차는 외로워 / 눈감아도 떠오르는 차창에 어린 모습~ (2절) 우연한 인연에 만난 그 사람 / 이별이 있을 줄 알면서도 잊지 못하고 / 기적에 작별인사 열차는 무정해 / 멀리가도 떠오르는 차창에 어린 모습~”

시골출신으로 서울서 힘들게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만들어진 ‘차창에 어린 모습’은 오래 가지 못했다. 발표되자마자 불건전한 가사가 국민의식개혁운동과 어긋난다며 방송금지곡으로 묶여버렸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군사정권의 이해부족에서였다. 새마을운동에 걸림돌이 된다며 시대의 뒤안길로 묻힌 것이다.그러던 중 임 씨에게 기회가 왔다. 1971년 12월 나훈아가 “임 선생님, ‘차창에 어린 모습’이 너무 좋은 곡인데 아쉽다”며 “가사와 리듬을 바꿔보자”고 제안했다.

임씨는 자고나면 히트곡을 낸 가요계 스타 나훈아 말에 감격,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용기를 얻어 학창시절 기차통학 때를 떠올리며 노래작업을 다시 했다.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던 시골기찻길, 고향친구(이쁜이와 꽃분이), 어머니가 들어가는 노랫말에다 빠른 리듬으로 바꿨다. 그렇게 해서 1972년 2월 나훈아가 취입한 불멸의 히트곡 ‘고향역’(오아시스레코드사)이 태어났다.

노래엔 역이 나온다. 황등역이 그 무대로 노래소재가 된 사연이 있다. 1950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등역은 전북 익산시(옛 이리시) 황등면 황등리에 있는 호남선 기차정거장으로 임 씨가 고교시절 매일 지나쳤던 곳이다.

순창에서 가난한 농가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중학교는 그곳에서 다녔지만 고등학교는 둘째형이 사는 익산 삼기면에서 다녔다. 황등역까지 20리 산길을 걸어 기차를 타고 익산 남성고를 다닌 것이다.

그 무렵 시골 역들이 다 그랬듯이 길가에 꽃들이 심어졌고 광장엔 꽃밭이 있어 기차손님들을 반겼다. 황등역도 그랬다. 가을이면 황등역~익산역 철길엔 코스모스꽃이 활짝 폈다.

감수성이 예민한 ‘고교생 임종수’는 코스모스꽃길을 보고 즐기며 기차통학을 했다. 역 풍경과 꽃길은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어른이 되면서 고향집과 그때의 철길모습이 가슴 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이미지는 노래에 녹아들었다. 신인가수 나훈아에게 ‘고향역’을 만들어줄 때 그때 정서들을 담았다. 추억의 황등역은 그렇게 해서 ‘고향역’ 노래 속으로 들어갔다.

‘고향역’ 히트로 유명작곡가 대열 합류

황등면민들은 “임종수 선생이 ‘고향역’ 노랫말을 그때 모습으로 너무도 잘 그려냈다”고 말한다. 삼기에서 황등까지 오가며 배고픔과 고향의 냄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역과 철길, 코스모스에 접목시켜 만든 노래임이 밝혀진 것이다.

‘고향역’은 지금의 임종수를 있게 한 불후의 명곡이 됐다. 작곡가 삶을 산 처음 5년여 무명시절을 보낸 그는 ‘고향역’이 빅히트하면서 유명작곡가 대열에 올랐다. 그때부터 그는 대중에게 먹히는 노래를 많이 작곡하는 ‘히트곡 제조기’ 소리를 들었다.

임종수 작품으로 성공한 주옥같은 노래와 가수들이 많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하수영, 1976년), ‘대동강 편지’(나훈아, 1981년), ‘옥경이’(태진아, 1989년), ‘부초’(박윤경, 1991년), ‘남자라는 이유로’(조항조, 1998년), ‘모르리’, ‘빈 지게’(남진, 2003년), ‘사랑이 남아있을 때’(문희옥, 2006년) 등 300여곡들로 가요계를 이끌었다.

KBS 전국노래자랑 심사위원을 15년간 하며 유명세도 탔다. 2008년 3월 국내 대학 중 처음 생긴 충청대 트로트전공 음악과 초빙교수로도 활동했다.

1942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 284번지에서 태어난 임 선생은 작곡가가 되기 전엔 남인수, 백년설 등의 영향을 받아 가수 꿈을 키웠다. 고교졸업 후 광주·전주KBS 전속가수에 이어 1967년 나화랑 작곡 ‘호반의 등불’을 취입, 가수로 데뷔했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미8군 무대출신 가수들이 팝송으로 가요계를 장악하자 자신의 창법이 시대에 떨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가수 꿈을 접었다. 피아노를 혼자 익혔을 만큼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살려 1960년대 말부터 작곡가 길을 걷고 있다. 2010년 11월 익산시 명예홍보대사로 위촉됐다.

‘고향역’은 나훈아에게도 의미가 크다. 취입곡의 리듬변화를 준 분기점을 이룬 노래인 까닭이다. 그 무렵 그의 노래는 4비트 트로트리듬에 쏠려있었다. 그러나 ‘고향역’을 계기로 8비트 고고리듬음악이 시작돼 리듬감이 한층 살아나는 곡들이 나왔다. 초기노래는 대부분 한마디 안에 4개 비트가 연주되는 쿵작쿵작 트로트리듬이 주를 이뤘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 ‘가지 마오’, ‘님 그리워’, ‘바보 같은 사나이’, ‘두 줄기 눈물’, ‘강촌에 살고 싶네’ 등이 그런 곡이다. 그러다가 ‘고향역’부터는 달라졌다.

한마디 안에 8개 비트가 연주되는 쿵작짝자 쿵작짝자 하는 8비트리듬노래로 바뀌는 전환점을 이룬 것이다. ‘고향역’, ‘우정’, ‘감나무 골’, ‘산마을처녀’, ‘고향의 그 사람’, ‘햇님과 달님’ 등이 그런 곡이다. 지금의 나훈아 노래는 대부분 고고리듬, 디스코리듬이다. ‘18세 순이’처럼 16비트로 된 테크노리듬곡도 있다.

1966년 취입곡 ‘천리길’로 가요계에 발을 디딘 나훈아는 ‘청춘을 돌려다오’, ‘울긴 왜 울어’, ‘머나먼 고향’, ‘사랑은 눈물의 씨앗’, ‘잡초’, ‘갈무리’, ‘무시로’ 등 수 많은 히트곡을 냈다. 그는 2006년 12월 공연을 끝으로 한동안 무대에 서지 않았다. 2008년 1월 서울에서 악성루머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다 다시 대중들 앞에 서고 있다. 최근 새 음반(2020 신곡 아홉이야기)을 내며 우리들 곁에 다가왔다.
 
노래무대 황등역, 화물허브역으로 한몫

노래배경지 황등역은 ‘고향역’ 히트바람에 크게 알려졌다. 황등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옛 서울 중앙청)를 황등돌로 지었을 만큼 국내 최대 양질의 화강암생산지며 황등고구마로 유명하다. 1970년대까지 황등돌을 일본에 팔기위해 역 앞에 쌓아놓은 유서 깊은 곳이다.

지금의 황등역은 간이역으로 2008년 12월 1일 여객취급을 멈췄다. 1943년 3월 6일 영업을 시작, 여러 명이 근무했으나 KTX개통 뒤 무배치간이역(2004년 12월 10일)이 됐다. 그러다 KTX 익산역사 건립에 맞춰 2011년 호남권 물류수송 화물허브역으로 한몫하고 있다. 2017년 2월 화물열차 입환(入換)역으로 거듭났다. 택배회사 화물터미널처럼 화물내용과 목적지에 따라 열차를 분리·결합·전선(선로를 바꾸는 것) 작업을 하는 역이 된 것이다.

왕성상 언론인 /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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