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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북한여성의 ‘오늘’…③섹슈얼리티와 새 세대 문화
한고은 기자 | 승인 2020.08.31 18:32
평양 여성의 모습. 사진제공=뉴시스·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여성소비자신문 한고은 기자] 한국여성정치연구소는 8월 26일부터 27일까지 양일간 ‘북한여성사회연구 온라인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북한사회의 시장화와 함께 그 중심에 선 북한여성은 이제 소비자를 넘어 생산자 및 유통자, 혹은 자본가로서 참여하고 있다. <여성소비자신문>은 이번 학술회의 발표문을 발췌해 북한사회의 시장화와 함께 독립적 존재로 부상하는 북한여성의 오늘을 기획 시리즈로 조명한다.

북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새 세대 문화

통일연구원 조정아 연구원에 의하면 북한여성의 역할은 시장화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더욱 커졌고 젠더관계와 의식의 변화도 뒤따랐다. 여성들의 삶의 변화는 직장생활 시장활동 등 공적 영역뿐만 아니라 가족 이성관계 섹슈얼리티와 같은 사적인 영역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삶에서 두드러진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부분은 섹슈얼리티 영역이다. 섹슈얼리티는 광범위한 의미로 성역할·성행위·성적 감수성·성적지향·성적 환상과 정체성을 정의하고 생산하는 모든 영역을 의미한다.

섹슈얼리티는 단순히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권력의 장 안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사회적 구성물이기 때문에 사회적 환경과 젠더정치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최근 북한의 사회경제적 변화 속에서 여성들의 섹슈얼리티 영역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사랑노래·사랑영화와 낭만적 사랑

최근 북한의 젊은 세대들 속에서는 자유연애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탈북 여성들의 증언에 따르면 청춘남녀들의 자유연애는 지역별 차이는 있지만 현재 북한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경제난이 가져온 일상의 변화 중 하나는 비디오와 테이프 알이라 불리는 CD와 DVD, MP3를 통해 유입된 외부 세계의 영상물과 노래의 확산이다. 경제난 시기에 생존을 위해 북한 주민들은 중국과의 국경을 넘나들며 다양한 물품을 들여왔는데, 한국 중국 미국의 영화 드라마 노래와 이를 재생하는 디지털기기도 그것에 포함됐다.

이 노래와 영상물들은 각지로 퍼진 거래선을 타고 전국으로 유통되었고 북한 여성들의 의식과 행위에도 영향을 미쳤다.

영상매체뿐만 아니라 남한 노래도 젊은 여성들의 정서와 연애감성에 영향을 미친다. 남한 노래 청취가 강한 처벌의 대상이 되는 북한에서 남한 노래는 종종 중국 조선족 노래나 재일조총련 노래로 인식되기도 한다.

북한의 젊은 여성들은 “남한노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표현하는 생활적인 노래여서 호소력이 크다”고 말한다.

계층별 지역별 차이는 있지만 한국 드라마를 통해 재현되는 풍족한 물질문화와 낭만적 사랑 에 대한 동경은 적어도 북한의 젊은 여성들의 공통된 정서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서는 기성세대와는 다른 젠더수행을 만들어내는 바탕이 된다.

결혼제도의 이완

북한의 기성세대가 중매를 통해 상대방이 지닌 조건에 기반한 결혼을 했다면 젊은 세대는 사랑을 결혼으로 연결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북한에서 상당수의 젊은 여성들은 낭만적 사랑 의 실천을 결혼이라는 주요한 생애전환점으로 연결지으며 자기 삶의 경로를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사랑의 성취로서의 결혼과 이후의 행복한 결혼생활은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는 개인의 선택의 영역이 되고 있다.

낭만적 사랑의 등장과 함께 교환으로서의 결혼제도가 유지되는 가운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기존 결혼 제도의 틀을 벗어나거나 이를 변형시키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모성담론과 재가족화를 강조하는 젠더 담론 속에서도 세포로서의 가족을 구성하고 결속시키는 결혼제도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제도의 틀을 벗어나는 대표적인 행위는 결혼기피다. 최근에는 여성들이 경제적 부담과 결혼 이후 여성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노동 부담 때문에 결혼을 기피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결혼을 할 경우에도 일정 기간 혼전동거를 하거나 결혼식을 한 후에도 자녀를 낳기 전까지는 결혼등록을 하지 않고 사는 커플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과의 접경지역에서뿐만 아니라 내륙지역의 도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결혼등록을 미루고 혼전동거를 택하는 주된 이유는 결혼등록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배급이 원활히 이루어졌던 시기에는 가구주의 직장에서 공식적으로 등록된 가족구성원들에게 배급을 공급했다.

따라서 여성이 결혼 후에 남편 직장에서 배급을 받으려면 결혼등록을 해야만 했다. 경제난 이전 북한 사회에서 배급제도는 남성 생계부양자를 중심으로 가족 내 위계질서를 구성하고 성별화된 사회적 역할을 정당화하는 중심기제였다.

그러나 경제난 이후 대부분의 직장에서 배급이 중지되면서 혼인에 대한 국가의 인정 효과가 사라졌다. 결혼등록 연기는 배급제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가부장제가 통제능력을 부분적으로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결혼등록을 유보하는 것은 법적 등록으로 인한 혜택이 없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결혼등록을 미룰 경우 편리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법적으로 이혼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여성이 이혼을 원할 경우 여성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기 쉽지 않고 절차도 복잡하다.

그런데 결혼등록을 하지 않으면 동거생활 기간에 배우자와 같이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 경우 복잡한 이혼 절차 없이 헤어질 수 있다.

결혼을 미루거나 기피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결혼등록을 미루는 최근의 관행들은 가족제도의 경직성을 우회하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북한 여성들의 전략적 젠더수행의 단면을 보여준다.

평양 여성들의 모습. 사진제공=뉴시스·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성교육과 성 지식의 습득

자유 연애와 스킨십 혼전동거 등 섹슈얼리티 측면에서 새로운 실천들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공적인 영역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북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에는 성교육 관련 교육내용이 거의 없다.

한국의 중학교에 해당하는 초급중학교 학년 교육과정 중 기초기술 과목에서 여학생에 한해서 여성위생상식을 가르치도록 하고 있지만 해당 교과서에는 관련 내용이 실려 있지 않다.

또한 북한에서 산전산후휴가 등 법 제도적 모성보호 조치가 시행되고 있지만 학교교육에서 이와 관련된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학교에서 별도의 성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초경에 관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당황과 두려움의 서사로 구성된다.

학교에서 성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 북한 여성들은 성관계·피임·낙태·임신·출산 관련 지식을 주위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습득한다. 가장 확실한 정보원은 연애할 나이의 ‘언니들’이다.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언니들’ 무리에 들어가면 성행위나 피임, 낙태 등에 관해 알게 된다고 말한다.

이밖에도 성과 관련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 유일하게 적법한 성지식의 원천이 되는 것은 여성의학책이다.

북한의 젊은 여성들은 또래들끼리 정보를 주고받으며 공식담론에서 수용되지 않는 다양한 성적 실천들을 해나간다. 허가받은 병원이 아닌 비공식 의료체계를 통한 피임과 낙태는 성관계에 따르는 책임이 온전히 여성의 몫으로 부과되는 북한 사회에서 최소한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키려는 행동이다.

그러나 미혼여성의 피임시술과 낙태수술은 주로 공적인 보건의료체계 내에서가 아니라 비공식 의료체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위생문제나 의료사고의 가능성 등 여러 가지 위험요소가 상존하고 있다.

용모 단속과 스타일의 추구

북한에서 여성의 외모와 옷차림은 개인의 자기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국가적 관리와 규율의 대상이었으며 자신의 몸과 외모를 치장하려는 여성들의 욕구는 퇴폐주의 외래문화의 산물로 여겨져왔다.

그런데 김정은 집권 이후 여성들의 외모에 대한 통제가 다소 완화되고 화장품과 의류 등 경공업 부문이 강화되면서 여성들의 외모와 관련된 소비품도 늘어났다. 특히 이전에는 금지되어 있었던 귀걸이와 목걸이 착용을 기혼여성들에게 허용하는 조치가 취해져서 농촌에서 짐을 지고 밭에 가는 여자들도 다 귀걸이를 착용했다고 한다.

최근 북한 여성들의 옷차림에 영향을 준 사건은 퍼스트레이디 리설주의 등장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리설주가 화려한 옷차림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공식행사에 동반참석하고 공식 선전매체를 통해 모란봉악단 삼지연관현악단 왕재산예술단 등 예술단원들의 파격적인 옷차림이 일반 여성들에게 노출됐다. 이는 선전매체를 통해서는 조선옷이나 점잖은 무채색의 정장옷만을 보아왔던 북한 여성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여성의 외모에 대한 국가 통제의 틈은 개성의 표현으로서 자신의 몸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최근 여성들의 외모와 옷차림에 대한 관심은 보다 개별화된 자기표현의 측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여성들, 욕망과 개성 갖춘 개인으로 실재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새 세대 여성들의 연애 경험은 기성세대들의 연애 및 결혼 관행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거주지 부근에서 오다가다 만난 남성들과 연애를 하고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남을 이어가기도 한다.

또한 폐쇄적인 성문화 속에서 또래와 소통하며 사회적 허용영역을 뛰어넘는 성적 실천을 하고 옷차림과 소비활동에서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추구한다.

일부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 속에서 결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결혼을 통해 남성의 반려자가 됨으로써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것보다는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인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제 북한의 새 세대 여성들은 국가의 젠더담론에서 강조하는 헌신과 봉사의 심성을 갖춘 수령 당과 일체가 된 대가정의 구성원이기보다는 경쟁과 이윤, 물질적 행복과 욕망, 개성, 미래에 대한 기대와 전망을 가지고 있는 개인으로 실재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경제난 이후 출산율 저하로 형제가 많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성장했고 어린 시절부터 외부 드라마와 노래들을 통해 기성세대와 다른 문화적 경험을 했으며 달라진 교육환경 속에서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다루며 성장했다.

북한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더불어 새 세대 여성들이 공유하는 이러한 성장환경이 당과 수령으로부터 또한 남성의 그늘로부터 독립적인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90년대생 북한 여성들이 보여주는 실천은 위로부터의 젠더정치와 젠더체계의 통제 하에 있지만 한편으로 그것에 도전하거나 우회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여성들의 크고 작은 실천과 이것이 일으키는 사회적 균열에 주목해야 한다.

한고은 기자  h9@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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