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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북한여성의 '오늘'... ①북한의 시장화, 새로운 여성 주체의 등장
한고은 기자 | 승인 2020.08.27 13:25
평양시민들의 모습. 사진제공=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여성소비자신문 한고은 기자] 한국여성정치연구소는 8월 26일부터 27일까지 양일간 ‘북한여성사회연구 온라인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북한사회의 시장화와 함께 그 중심에 선 북한여성은 이제 소비자를 넘어 생산자 및 유통자, 혹은 자본가로서 참여하고 있다. <여성소비자신문>은 이번 학술회의 발표문을 발췌해 북한사회의 시장화와 함께 독립적 존재로 부상하는 북한여성의 오늘을 기획 시리즈로 조명한다.

<시장화의 젠더의 형성> - 새로운 여성 주체의 등장

조영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시장화와 젠더의 형성’ 세션에서 ‘시장화와 새로운 여성 주체의 등장’ 발표문을 통해 북한사회의 시장화에 따라 북한여성이 시장의 새로운 주체로 거듭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북한 사회에서 시장이 확대되고 시장의 주요 활동 주체가 여성이라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다 홍민 외의 연구에 따르면 북한의 공식 시장의 총 수는 404개이고 시장 안에서 장사를 하는 매대의 수는 총 109만2992개로 추정된다. 대부분의 매대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은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에 종사하는 여성은 적어도 매대의 수와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변화한 북한의 사회경제적 환경 속에서 북한 여성의 경험은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시장 공간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면서 시장을 통해 획득한 자원과 정보를 통해 가족 내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외에도 여러 북한 여성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여러 현상들은 시장화 이전과 확연히 구별되는 측면도 있고 시장화 이전의 경험과 사회경제적 맥락의 연속선 상에 놓여 있기도 하다.

사회적 관계 변화와 개인성 획득

북한 여성이 맺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 중에서 시장화로 인해 변화된 양상이 두드러지는 관계는 배우자 또는 이성관계 가족 구성원과의 관계 국가와의 관계이다. 우선 배우자 또는 이성관계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그동안 북한 당국은 친밀한 관계를 혁명적 동지애 라는 것을 통해 의미화해왔다. 그에 따라 애정을 갖는 이성이나 친구 배우자와의 관계 역시 개인 적 친밀성 이 중요하기 보다는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가 강조되면서 각각의 관계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 수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화의 확산으로 여성의 의식이 변화하면서 연애관계 등에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북한에서 연애는 사적 감정으로 여겨진다기 보다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에 기반한 혁명적 관계로 담론화됐다. 결혼 역시 개인과 개인의 애정에 기반을 두었다기 보다 혁명적 관계의 결합이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북한 사회에서는 개인적 감정을 중시하는 연애가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이는 결혼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통적 결혼 관습에 따라 북한에서는 1970년대까지는 배우자 선택을 주로 중매를 통해 했다. 1980년대 들어서야 연애결혼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1990년대 이후에는 연애결혼이 더 많은 수를 차지한다고 한다. 연애관계에서 가족이나 조직의 뜻보다 개성과 취향이 중시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이러한 자유연애의 증가는 결혼과 연애를 분리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연애, 사랑이라는 감정의 대두와 연애관계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졌다는 것은 근대적 개인으로서 자율성에 대한 인식 확대로 이어진다.

배우자 외에 가족 구성원과의 관계에서 변화가 나타나는 지점은 자녀와의 관계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여성에게 중요했던 어머니 노릇은 자녀를 먹이고 입히는 것이었다면, 이후에는 자녀를 능력있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중요해졌다. 자녀 양육에서 중요하게 고려하는 내용의 변화는 여성의 어머니노릇에 변화를 야기했고 그 결과 여성의 네트워크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녀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실리적인 교육과 실리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리고 남들 보다 능력을 키우기 위해 여성들은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기 시작했다.

최근 북한의 여성들은 자녀 교육과 관련한 정보를 직접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여성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고 한다. 이는 여성 활동의 장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여성 활동 공간의 확장은 다양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새로운 문화와 삶의 양식에 대한 변화를 수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녀 양육과 관련해 부부 관계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고 가정 내에서 중요한 의사 결정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어머니 노릇이 갖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자녀 양육의 책임이 여성에게 전가되고 오히려 과거보다 역할의 내용이 더 많아졌다는 한계는 있지만 여성이 자녀의 삶에 대한 적극적인 기획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현실에 대한 인식과 미래에 대한 구상이 필요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획득하고 인적네트워크를 확장해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여성 주체의 실천이 갖는 변화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노동자로 국가구성원으로 지위를 부여하고 그에 따라 여성은 권리를 획득함과 동시에 국가 구성원으로서 의무를 했다. 과거에 국가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고 권리를 부여받지 못했던 여성은 권리의 획득을 통해 자신을 정치 경제 사회적 존재로 인식하면서 그에 따른 다양한 역할을 행해 왔다.

그 과정에서 국가 수령에 대한 충성심 역시 여성의 규범과 행위의 중요한 준거가 되어 왔다. 하지만 식량난 이후 국가로부터 혜택을 부여받지 못하고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조건이 상실됨에 따라 더 이상 여성은 국가에 종속된 주체가 아닌 국가로부터 독립된 주체로서 다양한 행위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비법적인 장사를 시작으로 시장규제에 대한 저항 지역과 국경의 이동 등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고 국가에 대한 인식 또한 변화해갔다. 국가에 대한 의존이 가능했던 과거의 물적 조건과 달라진 현재에는 국가에 대한 의존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국가가 아닌 개인을 더 중시하게 됐다.

사적 이익의 창출자로서 여성

이전 북한사회에서 여성이 행하는 노동은 사적 이익을 축적하는 활동이 아니라 국가의 생산성을 제고하고 배급 등을 통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는 데 도구였을 뿐이다. 하지만 시장의 확산에 따라 여성이 행하는 노동은 더 이상 국가 영역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사적 이익을 창출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생존을 위해 시작한 시장활동은 그 자체가 기존 규범에 대한 도전이었다. 시장활동을 위해 노동을 중심으로 규율화되었던 일상과 노동 규범으로부터 이탈했고 가정과 거주하던 지역을 떠나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하는 일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공식적인 영역에서 헌신적으로 노동하는 것이 도덕적이고 장사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여겼던 규범과 도덕이 퇴색되기 시작했다.

시장활동을 통해 기존에 사회적으로 인정되던 능력의 내용이 변화했고 이러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북한 여성들은 스스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내고 인적 물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 많은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여성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여성들은 국가 영역의 자원 개인적 자원을 동원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식량난 이후 시장활동의 주요 주체로 등장한 이들 중 하나가 돈주이다. 북한의 돈주가 자본주의식 어법으로 경제인 기업가라 할 수 있는데 돈주는 돈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과거 고리대업자를 지칭했던 말이라면 최근에는 자본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이들을 칭한다.

최근 돈주는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것을 넘어 투자의 개념으로 공장 기업소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자본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북한의 돈주 중 여성이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추산되고 있지 않지만 최소한 매대 장사는 거의 다 여성이 하고 있기 때문에 자영업자로서 여성의 수는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 시대 들어 경제 관련법들을 개정했는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기업소법’이다. 개정된 기업소법에서는 우선 기업의 경영권이라는 새로운 개념 범주가 등장하면서 기업소의 자율성과 경영권의 부여는 여성 경영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북한에서 여성 경영인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공장 기업소 상점 등의 지배인의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여성경영인에 해당한다고 할 때 주로 여성경영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서비스업에 종사한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시장화가 되면서 여성의 진출과 경제사회적 성취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대표부문이 상업이다. 상업 분야에서 여성지배인의 수가 다른 분야에 비해 많고 현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현재적 지위를 차지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각 영역에서 자신의 경제적인 역량을 발휘하는 여성들이 있다. 이들은 국가 영역에서 습득한 기술과 숙련을 활용하거나 시장을 통해 스스로 역량을 개발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한다. 어떤 여성은 전문학교에서 피복과를 다니면서 습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공장에는 적만 걸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 이 경우는 여성 자신이 계획하고 축적한 숙련을 활용해 시장에서 소득을 창출한 사례이다. 또 다른 경우 간호원으로 전문성을 획득한 후 병원을 그만두고 개인적인 의료활동을 해 돈을 번 사례도 있다.

이처럼 스스로 경제활동을 위해 능력을 개발하는 것은 시장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애초에 식량위기 당시 장사로 먹고 살기 시작한 여성은 시장활동에서 자연스럽게 장사의 기술과 요령을 발굴 습득해나갔다. 그러한 경험의 축적이 시장의 확대 과정에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데 자원이 되기도 했다.

시장활동 경험이 있는 북한이탈여성들은 시장활동에서 이익을 창출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과 자질에 따라 다르다고 응답했다. 개인적 특성이 장사에 부합하냐도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장사와 관련한 정보를 얻고 수완을 발휘하는 것은 경험 등을 통해 개발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여성들은 시장활동과 관련한 역량도 스스로 발굴하고 개발해가고 있다.

소비 주체로서의 여성

최근의 북한 젊은이들에게 유행의 원형은 ‘남조선’ ‘자본주의’ ‘여성’이 시장의 주요 코드를 이루는 가운데 되새겨진다. 북한 사회에서 시장은 물질생활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일상적인 공간이 되고 예전과는 다른 문화를 생성해내는 공간이 됐다.

시장에서는 남한의 드라마와 영화와 같은 이를 볼 수 있는 전자제품이 유통되고 있고 드라마나 영화 DVD를 통해 보게 된 남한의 화장과 패션 등이 유행의 흐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 공간 확장 내용의 다양화는 여성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소비행위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대표적인 소비 활동으로 외모가꾸기 집가꾸기 등을 볼 수 있다. 2000년대 이후부터 본격화된 외모 가꾸기의 유행은 최근 적극적으로 화장과 성형수술 등을 통해 외모를 가꾸고 주택을 개조하는 등 유행을 따라 갈 뿐만 아니라 유행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소비는 취향을 만들어내면서 개인성을 더욱 강화한다. 과거 획일적이고 균질적이었던 소비 행위가 다양한 형태와 양상으로 나타나게 되면서 여성들은 차이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무엇이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어떤 취향이 우월한 것이고 그러한 취향을 갖는 이들은 누구인지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소비를 통해 개인을 인식하게 되고 어떤 문화를 선택해 수행하는 존재가 될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 선택하게 된다.

한고은 기자  h9@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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