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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 성폭력 2차 피해로 이중고 겪어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이사
김은석 기자 | 승인 2013.05.29 16:27

[여성소비자 신문=김은석 기자]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파문과 배우 박시후 사건 등은 성폭력 피해의 심각성을 환기시켰다.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국가 고위 공무원과 대중 앞에 서는 배우라는 점에서 그 충격은 더했다. 이번 사건들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공분은 확산됐지만 피해 여성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인식은 제자리걸음 상태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이사

성폭력 사건 증가…신고 횟수 늘어났을 뿐 과거부터 현재까지 늘 일어나 
윤창중 사건 식상할 정도로 지속된 문제…피해 여성에 대한 사과 시급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성범죄 발생률 2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들의 신고율은 10%에 그치고 처벌 받는 가해자는 전체 성폭력 범죄자의 2%도 되지 않는다. 이에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이사는 성폭력 처벌을 무조건 강화하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형량보다 사회적 인식 제고가 먼저라는 것. 성폭력 문제를 단순히 여성들의 일로만 치부하는 게 아닌 ‘인권’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미경 이사와의 일문일답.

형랑보다 인식제고 먼저

-성폭력 사건이 5년 전에 비해 급증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4천500여건이던 신고가 2만건으로 늘어났다. 3~4배 오른 것이다. 그만큼 성폭력 피해자들이 수면위로 올라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신고 횟수가 증가한 것이지 과거에 비해 성폭력 횟수가 갑자기 늘어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과거에 이어 현재에도 여전히 성폭력은 우리 주변에서 빈번히 일어났다.”

-자신의 아픈 경험을 세상에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수사과정에서 또 다른 아픔을 겪는다.

“그렇다. 문제는 자신의 아픔을 힘들게 밝힌 피해자들이 오히려 역공을 당하는 것이다. 이것을 바로 2차 피해라고 한다. 2004년에 발생한 밀양집단성폭행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울산에 거주하는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을 밀양 지역의 고교생 44명이 1년 동안 성폭행한 사건이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관이 피해 여성의 신상정보를 유출시켰고 피해 여성이 가해자 가족에게서 협박을 받는가 하면 담당 경찰관은 범인 식별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의자 41명과 피해 여성을 세워놓고 불고 5미터 앞에서 범인인지 확인하라고 했다. 여경을 상대로 수사해도 되느냐는 요청도 역시 거부당했다.”

-2차 피해에 대한 해결 방안은 없나.

“밀양집단성폭행사건 경찰 조사 과정에서의 2차 피해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인적사항을 누출한 것과 경찰의 모욕적 수사에 대해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는 성폭력 2차 피해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인정한 좋은 사례가 됐다. 피해자의 강력한 목소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경찰은 성폭력 사건을 수사하면서 피해자의 고통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손해배상을 받은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피해자 관점의 과학적 수사 필요

-성폭력 피해자를 배려한 법적 조치는 보강되었나.

“1994년 성폭력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2000년도에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2011년도에는 2차 피해 예방 차원에서 증인지원실이 운영되고 있다. 법정과 인접한 장소에 설치된 증인지원실에서 피해 여성은 심리적 안정을 취하할 수 있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 증인은 증인지원관의 안내로 피고인이나 일반 민원인과 분리된 동선을 통해 법정으로 이동할 수 있다.”

-성폭력 가해자들이 항소심에서 잇따라 감형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면.

“실제 고소를 하면 마치 모든 게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소 내용 중 33%만 수사에 들어가고 나머지 67%는 사실 확인조차 이뤄지지 않는다. 법적인 조치는 가해자 체벌 위주로 흘러갈 뿐이다. 가해자의 형량은 중요치 않다. 수사과정이 얼마만큼 피해자의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성폭력 이후 구조 요청 방법, 피해 후의 대처방법 등을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속에서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여성들은 성폭력을 당한 후 2~3일 동안 ‘멍’한 상태로 지낸다. 바로 신고 할 수 있는 정신상태가 아니다. 성폭력 이후 여성이 산부인과에 들러 증거를 확보하고 차분하게 대처해 나가면 오히려 ‘꽃뱀’ 아니냐는 시선을 보낸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는가.

“사건 자체가 충격적이지만 식상할 정도로 지속된 문제이기도 하다. 관행처럼 내려오는 우리 사회지도층의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인식이 이번 사건에 깔려 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인턴’을 ‘여성 가이드’로 지칭하면서 업무상 위계관계를 비켜가려는 시도를 했다. 자신보다 아래 직급의 사람을 대하는 안하무인격 태도가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비슷한 사례는 늘 벌어졌었고 가해자들의 대응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윤창중 전 대변인이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피해자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 것이다.”

-최근 여론을 들끓게 한 여러 사건들로 인해 성폭력 피해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남성의 잘못된 행동을 불가피한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성폭력 가해자는 일반인이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오영춘, 김길태 등 기사화 된 인물들이 뿔 달린 괴물처럼 여겨지지만 실상 주변에서 존경받는 사람들도 성폭력 가해자가 된다. 성폭력 문제를 그들만의 일이라 생각하는 잘못된 통념도 버려야 한다. 여성들만의 일이 아닌 인권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수사과정에서 피해 여성들이 직접 만나는 경찰, 판사들의 눈빛 하나하나가 2차 피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건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통념 또한 바뀌어야 한다.”

-성폭력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바로 교육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반 단위의 토론식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 과정에서 어린이들의 고민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가해자를 대상으로 강의를 했으나 그들 다수가 여전히 자신들의 잘못을 단순한 실수로 생각하고 있다. 교육 이외에는 답이 없다. 본질은 ‘인권’이다. 이번 사건들을 계기로 일상생활에서 우리들의 사고를 점검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편견들과 싸우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은석 기자  kesh@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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