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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 읽기]이준관 '구부러진 길'
구명숙 숙명여교 명예교수 | 승인 2020.08.21 17:11

[여성소비자신문]구부러진 길

        -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듯

이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시 감상-

이준관 시인의 시 ‘구부러진 길’을 들여다보면, 가로수 늘씬늘씬 서 있고 앞이 훤히 내다보이는 신작로 길을 흙먼지 일으키며 내달리던 트럭에 매달려 그 속도를 ‘좋아라’ 하던 아이들의 하얀 이가 보이는 듯하다.

걸어서 가야하는 오솔길 옆엔 들꽃들이 한들거리고 나비가 날고 아기자기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구불구불 간다.” 산과 마을을 품고 가는 길은 나보다 남을 위해 가는 길일 수도 있으며, 느릿느릿 일상에 쫓기지 않는 여유로운 길이기도 하다.

욕망의 길, 자유의 길, 폭풍우의 길, 성공의 길, 실패의 길, 사랑의 길, 가깝고도 먼 인생길들을 어떻게 헤쳐가야 할까?  

시인은 아예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고 고백한다. 길은 모든 삶 앞에 놓여 있다. 그저 누구나 한 생애뿐이지만 그 앞에는 수많은 길들이 펼쳐져 있고 끊임없이 유혹한다.

하지만 혜택 받은 반듯한 길보다 알 수 없는 구부러진 길 위에서 울퉁불퉁 온갖 고통과 슬픔을 극복하고 스스로 깨달아 자신의 길을 걸어온 삶이야말로 가치 있는 참다운 기쁨의 삶이라고.

구명숙 숙명여교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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