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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던지기, 신발 벗기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0.08.19 10:36

[여성소비자신문]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위기 경보에도 불구하고 주말이 되면 서울의 영등포, 시청, 을지로 등 번화가 여기저기에서는 정부의 정책들에 항의하는 각종 시위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최근 들어 이러한 집회에서 ‘신발 던지기’ 퍼포먼스를 행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 달 말에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 ‘임대차 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정부의 부동산정책 반대 및 조세저항 시위가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이 밖에도 ‘전국철거민협의회’ 등은 물론 급기야는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정교모)’의 대학교수들까지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다. 이러한 집단행사나 시위에서는 집단적 의사표시의 상징으로 촛불이나 태극기 흔들기가 활용되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기에 ‘신발 던지기’가 더해져 의사표시가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신발이 집단항의 상징물로 등장한 것은 한 북한 인권단체의 정창옥 대표가 지난 7월 16일 오후 국회의사당에서 국회 개원식 연설을 마치고 나오는 대통령을 향해 자신의 신발을 벗어 던진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는 현 문재인 정부가 상식과 원칙과 도덕을 내 팽개치고 탈북북한 인권단체들을 탄압하는 것에 대한 항의표시라고 했다.

‘신발던지기(shoe-throwing)’는 성경에서 유래한다. 기독교 구약성경의 시편(60:8)에 “에돔에는 나의 신발을 던지리라”라는 글이 있다. 옛날 이스라엘 나라의 두 번째 왕인 다윗의 노래 가운데 한 구절로서 사해 남쪽에 위치한 에돔(Edom)부족을 정벌하여 이들을 이스라엘의 종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그 당시 중동지역에서 일반인들은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신었고 더렵혀진 손님의 신발 끈을 풀거나 신발을 드는 일은 노예가 맡아서 해야 했다. 따라서 신발을 던져 주는 것은 상대방을 소유하거나 지배한다는 경멸의 표시였다.

이러한 중동지역의 경멸적 행태인 신발투척이 유럽에 들어와 점차 상대방에 대한 경멸이나 정치적 항의 표시로 빈번히 활용되었다. 고대 로마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ConstantiusⅡ, AD359)가 신발에 맞았고, 2008년 12월 미국 부시(G.W.Bush) 대통령의 이라크 방문 시 기자회견 때 알 바그다드 TV 특파원인 알 자이디(al-Zaidi)가 부시 대통령에게 신발을 던졌다.

2009년에는 영국을 방문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신발 테러를 당했고 이어 유럽과 북미는 물론 인도, 중동, 터기, 호주. 중국, 대만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정치적 불만과 항의의 표시로 신발던지기 퍼포먼스가 행해졌다.

중동지역에서 유래하여 전 세계적으로 번져가고 있는 경멸적 퍼포먼스가 올해 들어 우리나라에서 대규모로 펼쳐지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깝다. 이는 지난 3년여에 걸친 문재인 정부의 국가 경영이 보여주는 무능과 흔들리는 국가 안보 및 국가 정체성의 혼란 때문이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의 지지를 받아 집권한 이 정부는 자신들만이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온 정의로운 민주투사라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 사로 잡혀 있다. 그 결과 보편성이 결여된 ‘선택적 정의(selective justice)’에 빠져있고 이것이 국정철학이 되었다.

그 결과 정의를 자신들에게만 유리하게 선택적으로 적용하여 ‘내로남불’의 불신사회가 되었고 사회윤리와 정의의 붕괴를 가져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위층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다. 안희정 도지사, 오거돈 부산시장, 박원순 서울시장과 같은 집권 고위층의 연쇄적인 성범죄에 이어서 김제시 시의원들간의 불륜스캔들, 부산 시의원의 음식점 여직원 성추행 등이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다. 인권과 성 평등을 위해 살아 왔다는 진보좌파 권력층의 위선과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 즉 내로남불의 민낯이다.

또 하나의 위선적인 정치행태는 탈북 북한 인권단체들에 대한 탄압과 대북전단 살포금지이다. UN과 국제인권단체의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북전단 살포금지법을 제정하여 드론과 풍선전단을 북으로 보내면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인권운동의 사도들인양 행세해온 이들이 헌법을 어겨가면서까지 북한 독재자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안절부절이다. 하지만 약 2500만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위선의 극치이다.

가장 강력한 신발던지기 퍼포먼스의 대상은 재앙 수준인 부동산 참사이다. 23번에 걸친 정부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치솟는 아파트 값 때문에 서민들에게는 집 한 채 소유하기란 그림의 떡이 되었다. 집을 살 수 없으니 전세라도 마련하려 했는데 전세 물건이 사라졌다. 국회에서 야당과 토론 한번 없이 하루 만에 통과 처리하고 다음날 시행에 들어간 ‘부동산 3법’ 덕분이다.

하릴없이 월세라도 찾아 나선 힘든 서민들에게 월세가 대세이고 미덕이라고 염장 지르는 집권층 진보 엘리트들에게 신발 세례는 당연하다. 갖은 노력 끝에 집을 장만하여 한숨 돌리는가 싶더니 세금폭탄이 떨어졌다. 집을 사도, 집을 가져도, 집을 팔아도 괴롭고 고통스러우니 신발이라도 벗어 던져야 할 것 아닌가.

전 국민들에게 경제 사회적 영향이 막대한 법을 그토록 신속하게 일사천리로 시행하는 경우는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니 이는 민주주의 붕괴 신호음이다.

과거 파시즘은 독일의 히틀러나 이태리의 무솔리니의 통치에서 보듯이 어용지식인들과 여론조작을 이용하여 정권을 잡은 후 기본적인 인간평등을 부인하고 엘리트에 의한 비합리주의를 지향한다.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엘리트 좌파들이 세력을 결집하여 헌법정신인 자유주의와 법치주의를 기피하고 자신들만의 선택적 정의를 기준으로 국민들을 적과 동지로 양분하고 동지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쟁을 이어 나간다.

그러나 신발 던지기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수가 늘어가고 있다. 검찰의 검사들이 반발하고 대학교수들이 거리로 나섰다. 기본과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문대통령과 집권세력은 이제 선택적 정의가 아닌 보편적 정의를 그리고 존재와 의식의 일치를 회복해야한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집권세력은 국민들의 공복이다. 신발던지기가 성경에서 유래하듯이 공복의 자세 또한 하나님의 가르침에서 시작한다. 유대민족을 이끈 지도자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 ‘신발벗기’는 옛 모습을 버리고 겸손한 자세로 맡겨진 소명을 완수하라는 것이다. 시인이며 철학자인 에머슨(R.W.Emeison)의 말에 귀 기울이자. “겸손한 자만이 다스릴 것이요, 애써 일하는 자만이 가질 것이다.”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kkucwka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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