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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 읽기]피천득 '이 순간'구명숙의 행복한 시 읽기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0.07.13 14:38

[여성소비자신문] 이 순간 
     -피천득-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 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다

 -시 해설-

인간으로서 숨을 멈추는 일, 마침표를 찍게 되는 일, 그것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돌아간 사람의 흔적은 쉬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혹여 남은 자 누구에겐가 아름다운 항기로 남아 오래 오래 함께 갈 수 있다면 참 좋은 삶을 이뤄낸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수필가로 널리 알려진 피천득의 시 ‘이 순간’은 살아있기에 ‘화려하고 찬란하고 즐거운’ 순간을 맛보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마침내 ‘삶’이 위대한 승리로 느껴지게 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처럼 과거를 생각하거나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완벽히 집중하며 사람의 향기를 짙게 남기는 그런 삶을 연상하게 한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니코스의 무덤 앞 이 세 문장의 묘비가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완전 자유인에게는 “이 순간”이 주어지고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삶으로 충만하게 만들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피천득은 ‘이 순간’의 마지막 연에서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 가는 때가 오더라도/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다”라고 힘주어 노래한다. 살아있는 것들은 마침내 다 사라지고 마는 그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 속에서 죽음을 뛰어넘는 삶의 미학을 온 몸으로 엿보게 한다.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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