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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 읽기] 늦깎이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0.06.26 16:02

[여성소비자신문] 늦깎이

도종환

고통 때문에 깨달음을 얻고 깨달음 때문에 고통이 깊어갑니다

이별이 온 뒤에야 사랑을 알고 사랑하면서 외로움은 깊어갑니다

죽음을 겪은 뒤 삶의 뜻 알 것 같아 고개 드니 죽음이 성큼 다가섭니다

우리가 사는 이 짧은 동안

잃지 않고 얻는 것은 없으며 최후엔 또 그것마저 버리게 됩니다

 

-시 해설-

살아가면서 누구나 기쁨보다 힘들고 괴로운 일들을 더 많이 겪게 되는 것 같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막막함에 이르면, 여린 마음에 죽음을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도 한치 앞을 모르면서 복잡한 세상걱정에 근심도 많다. 언제나 지금, 이 ‘순간’만을 흐르는 강물에 마음을 푹 담그고 하늘을 보면, 눈멀고 귀먹은 듯 둥둥 떠다니며 구름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고통 때문에 깨달음을 얻고 깨달음 때문에 고통이 깊어”가며, “이별이 온 뒤에야 사랑을 알고 사랑하면서 외로움은 깊어‘간다는 시인의 노래는 역설적 진리인가. 혹은 건넘은 삶은 없다는 단호함인가. 고통의 무게를 견디며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동안 늦깎이가 될 수밖에 없어도 스스로 경험을 해보고서야 얻는 깨달음이 값진 것임을 일깨워준다.

모든 삶은 모험이고 실험이다. 하지만 실험과 실패를 할수록 더 나아지는 인생일지는 알 수 없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진실의 그릇에 담겨 쓴맛 단맛을 알고 나서야 인생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나와 잠깐 소풍을 마치고 다시 본래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 그렇게 죽음은 자연스러운 삶의 한 과정이지만 “죽음을 겪은 뒤 삶의 뜻 알 것 같아 고개 드니 죽음이 성큼 다가”선다는 속절없이 짧은 인생이다.

“우리가 사는 이 짧은 동안/잃지 않고 얻는 것은 없으며 최후엔 또 그것마저 버리게 된”다는 시인의 말이 텅 빈 깊은 항아리 속 긴 여운으로 울린다.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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